{
  "title": "소울라이드 1",
  "subtitle": "깨어 있는 비히클의 하루",
  "intro_paragraphs": [
    "동녘은 늘 남의 몸을 빌려주는 쪽이었다. 의식이 완전히 꺼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님들에게 외면받았고, 그래서 더 값싸고 더 위험한 일들이 그의 몫이 되곤 했다. 그날도 그는 급전이 필요하다는 사실만 붙들고 클럽하우스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평범한 소울라이드 업무가 아니었다. 젊은 몸을 갈아타는 권력자들, 죽어도 상관없는 더미들, 그리고 살아남아 버린 한 사람의 의식. 동녘의 하루는 그 순간부터, 남의 욕망이 만든 세계의 밑바닥을 향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
  "sect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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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ill_id": "episode_01_still_001",
      "section_title": "깨어 있는 캡슐",
      "image_caption": "마지막 캡슐 속에서 눈을 뜬 동녘",
      "paragraphs": [
        "폐창고는 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웠다. 낡은 벽을 따라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캡슐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그 안에는 건장한 남자들이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모두가 죽은 듯 고요한데, 맨 끝 캡슐 하나만 달랐다. 그 안의 동녘은 멀쩡히 눈을 뜨고 검사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사관은 마지막 상태창을 확인하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다른 캡슐들이 의식 활성화 0퍼센트에 머물러 있는 동안, 동녘의 수치는 혼자 100퍼센트를 가리키고 있었다. 동녘은 자신이 왜 그런 반응을 불러오는지도 모른 채, 그저 평소처럼 어리둥절한 얼굴로 제 이름을 말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이곳에서 가장 잘못 들어온 사람이 되었다.",
        "잠금장치가 팔다리를 죄고 캡슐 문이 닫히자, 동녘은 끝까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어가려 했다. 오늘 운이 좋은 날인 줄 알았다고, 급하게 천만 원이나 당겨 받았다고. 그러나 하얀 수면 가스가 차오르자 그의 말은 입 모양만 남았고, 상태창의 숫자도 천천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
      "image_after_paragraph": 1
    },
    {
      "still_id": "episode_01_still_002",
      "section_title": "젊은 얼굴들",
      "image_caption": "젊은 몸으로 모여든 의원들",
      "paragraphs": [
        "같은 시각 VIP 룸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고급 연회장 같은 공간에 젊고 잘생긴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었다. 그들 가운데 강 의원은 김 의원의 목을 장난스럽게 끌어안으며 오래된 농담을 꺼냈고, 김 의원은 익숙한 투로 받아쳤다. 몸은 모두 젊었지만, 말끝마다 묻어나는 세월과 권태는 감출 수 없었다.",
        "그들은 새로 갈아탄 코와 머리숱을 품평했고, 멜트다운 기미가 있는 몸은 미리 버리는 편이 낫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잠시 뒤 배틀로얄 시작 안내가 울리자, 남자들은 리클라이너에 하나씩 몸을 눕혔다. 보좌관들이 번호가 붙은 기계를 목 뒤에 붙이자, 젊은 육체들 속으로 늙은 의식들이 미끄러지듯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
      "image_after_paragraph": 1
    },
    {
      "still_id": "episode_01_still_004",
      "section_title": "헬기 안의 목소리",
      "image_caption": "군복으로 갈아입은 채 흔들리는 헬기 안",
      "paragraphs": [
        "동기화가 끝난 뒤 동녘이 눈을 뜬 곳은 비행 중인 군용 헬기 안이었다. 남자들은 군복으로 갈아입고 있었고, 그는 군화 하나 제대로 맞춰 신지 못한 채 비틀거렸다. 몸은 분명 자기 것이 아닌데, 감각은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멀리서 49번 몸을 탄 김 의원이 다가와 그를 강 의원으로 착각한 채 말을 붙였다.",
        "그때 동녘은 처음으로 자기 안에서 낯선 목소리를 들었다. 죽는다고요, 하고 되묻는 목소리. 그는 누가 말했는지 몰라 두리번거렸지만, 곧 그 목소리가 자기 몸 안에 함께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한 몸에 두 의식이 겹쳐 있는 듯한 불쾌한 어긋남 속에서, 헬기는 참가자들을 하나씩 하늘 아래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출구 앞에 선 동녘은 뛰어내리려 해도 다리가 제멋대로 돌아오고, 손은 난간을 붙잡았다. 몸과 의식의 박자가 맞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몸부림 끝에, 뒤에서 웃고 있던 김 의원이 그를 발로 차 버렸다."
      ],
      "image_after_paragraph": 2
    },
    {
      "still_id": "episode_01_still_005",
      "section_title": "추락",
      "image_caption": "끊어진 낙하산과 함께 떨어지는 동녘",
      "paragraphs": [
        "하늘은 너무 밝았고, 땅은 너무 멀었다. 동녘은 허공에서 몸을 뒤틀며 낙하산을 펴 보려 했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엉킨 줄뿐이었다. 그제야 몸 안의 또 다른 주인, 강 의원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튀어나왔다. 왜 의식이 살아 있느냐는 짜증 섞인 질문과, 배틀로얄에 왜 비히클이 들어왔느냐는 당혹이 뒤엉켜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둘은 서로를 탓하며 허둥댔다. 강 의원은 레버를 찾지 못했고, 동녘은 죽기 싫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겨우 당겨 본 줄은 한순간 펼쳐지는 듯하다가 툭 끊어졌고, 추락은 더 빨라졌다. 그제야 동녘은 남의 몸을 빌려주는 일과 자기 목숨을 내놓는 일이 얼마나 다른지, 뼈가 먼저 알아차리는 공포 속에서 깨달았다.",
        "마침내 그는 제 손가락에 피가 맺히도록 줄을 감아 당겼다. 강 의원이 아프다고 소리치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았다. 간신히 낙하산이 다시 펴졌을 때, 아래에서는 이미 총성이 번지고 있었다."
      ],
      "image_after_paragraph": 1
    },
    {
      "still_id": "episode_01_still_007",
      "section_title": "시체 메타",
      "image_caption": "시체들 사이에 몸을 숨긴 동녘",
      "paragraphs": [
        "야산에 떨어진 뒤 동녘은 폐가로 몸을 숨기고 겨우 총을 주워 들었다. 드롭 상자가 떨어지는 산등성이를 향해 사람들이 몰려가자 그는 본능적으로 멈췄다. 잠시 뒤 기관단총 소리가 터졌고, 달려가던 몸들이 허무하게 쓰러졌다. 중턱에서는 김 의원이 탄 몸이 태연하게 총구를 흔들고 있었다.",
        "동녘은 그 광경을 보고서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했다. 싸우는 대신 죽은 척하는 것. 그는 방금 쓰러진 시체들 곁에 몸을 눕히고 숨을 죽였다. 바로 옆에 누운 몸을 흘끗 바라보는 눈에는 혐오와 두려움이 동시에 어렸다. 더미라 해도, 방금 전까지 움직이던 몸들이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시체 하나가 갑자기 꿈틀거렸다. 멜트다운이라는 말을 강 의원이 가볍게 내뱉는 동안, 그 몸은 벌떡 일어나 동녘에게 달려들었다. 자신 있게 자세를 잡았던 동녘은 속절없이 얻어맞았고, 살아남는 일은 끝내 우아한 방식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만 더 선명해졌다."
      ],
      "image_after_paragraph": 2
    },
    {
      "still_id": "episode_01_still_014",
      "section_title": "이상한 구원",
      "image_caption": "포승줄을 끊어 주는 DR.NEX",
      "paragraphs": [
        "기묘한 행운 끝에 동녘은 배틀로얄의 우승자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자 그는 머리에 리본까지 묶인 채 끌려와, 불법 비히클이라는 이유로 다시 물건처럼 처리될 처지에 놓였다. 강 의원은 그를 탐내다가도 귀찮아했고, 오리엔티스의 치호는 법과 권력을 사이에 두고 쉽게 물러서지 못했다. 동녘은 자기 목숨이 누구의 말 한마디에 포장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분노보다 먼저 질려 버렸다.",
        "그때 클럽하우스 바깥이 소란으로 뒤집혔다. 철제 가면을 쓴 자들이 트레일러에서 쏟아져 나왔고, 젊은 몸의 의원들은 순식간에 사냥감이 되었다. 총성과 비명이 뒤엉킨 한복판에서, 화려한 장갑과 갑옷을 두른 DR.NEX가 동녘 앞에 멈춰 섰다. 그는 변조된 목소리로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말하더니, 무기로 포승줄을 끊어 주었다.",
        "동녘은 얼떨떨한 얼굴로 왜 자기는 데려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자존심이 상할 만큼 진심 어린 질문이었다. 대답 대신 DR.NEX는 그를 잠시 바라보았고, 곧 다가오는 오리엔티스의 공격 속에서 결국 억지로 트레일러에 태워 버렸다. 구원과 납치의 경계는 그날 내내 그렇게 흐릿했다."
      ],
      "image_after_paragraph": 2
    },
    {
      "still_id": "episode_01_still_025",
      "section_title": "네잎클로버",
      "image_caption": "덕현이 건네는 작은 행운",
      "paragraphs": [
        "도망과 추격 끝에 겨우 살아 돌아온 밤, 동녘을 붙잡아 준 것은 거창한 정의가 아니라 판자촌 골목의 사람 냄새였다. 순례는 밥부터 먹고 가라 했고, 덕현은 내일 클론 행사에 꼭 같이 가자며 들뜬 얼굴을 했다. 세상은 자꾸 사람을 값으로만 재려 했지만, 그 좁은 골목에서는 아직 누군가의 안부를 먼저 묻는 말이 남아 있었다.",
        "덕현은 주머니를 뒤적여 네잎클로버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자기 할머니를 위해, 하나는 동녘의 할아버지를 위해. 작은 잎 하나가 동녘의 손바닥에 올라앉는 순간, 그는 이상하게도 하루 종일 버티고 있던 울분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자기 할아버지의 내일을 함께 빌어 준다는 사실이, 그날 처음으로 진짜 행운처럼 느껴졌다.",
        "동녘은 클로버를 꼭 쥔 채 집으로 뛰어갔다. 서창은 여전히 완고했고, 가난은 여전히 방 안에 눌어붙어 있었지만, 적어도 내일을 향해 걸어갈 이유 하나는 손안에 남아 있었다."
      ],
      "image_after_paragraph":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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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till_id": "episode_01_still_033",
      "section_title": "2068번",
      "image_caption": "당첨 번호를 확인하는 동녘",
      "paragraphs": [
        "클론 행사장은 축제처럼 밝았다. 무대 위에 오른 한재호는 가난한 사람도 영원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했고, 군중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동녘은 그 말들을 반쯤 믿고 반쯤 의심하면서도,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 믿음에 기대고 싶었다. 순례와 덕현이 두 손을 모으고 번호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주머니 속 네잎클로버를 만지작거렸다.",
        "먼저 순례의 이름이 불렸을 때 덕현은 세상이 다 자기 편이 된 것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마지막 번호, 무기명 2068번이 호명되자 이번에는 동녘이 얼어붙었다. 손에 쥔 번호표를 다시 확인하는 짧은 순간, 믿기지 않는 기쁨과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동시에 밀려왔다. 무대 위에서는 순례와 덕현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고, 한재호는 다정한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동녘은 이 기회를 할아버지에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대 가장자리에서 그를 알아본 눈들이 있었다. 은성과 서현, 그리고 끝내 다가와 귓속말을 건네는 치호. 축하의 박수 속에서도 동녘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겨우 붙잡은 희망은, 아직 누구의 손에서도 완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
      "image_after_paragraph":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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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utro_paragraphs": [
    "그럼에도 동녘은 오리엔티스 안으로 들어간다. 희망이 함정일지라도, 함정 속에라도 할아버지를 살릴 길이 있다면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이미 클론된 줄 알았던 몸들이 캡슐 속에서 울부짖는 광경과, 자신을 볼 때마다 흔들리는 서현의 낯선 시선을 마주하게 된다.",
    "에피소드의 끝에서 치호는 동녘을 붙잡아 서현 쪽으로 밀어 넣고, 서현은 마지막 힘으로 라이드 건을 쏜다. 동녘의 의식 속으로 한 여자의 삶이 파도처럼 밀려들며, 그의 세계는 다시 한 번 뒤집힌다. 남의 몸을 빌려주며 살아온 청년은 이제, 남의 기억까지 떠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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