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破果 Old Girl Ver. 20221021 – 107 민규동 수필름 엔진 이성규 1. (과거) 강도영의 아파트 / 낮 탕탕탕- 어둠 속에서 충돌음이 규칙적으로 울리고 있다. 화면 밝아지면 작은 절구 속에서 알약이 하얀 가루로 빻아지고 있다. 식탁에 앉아 색연필로 스스슥- 그림일기를 쓰고 있는 9살 남자 아이, 강도영. 부엌에서 알약을 빻고 있는 호리호리한 40대의 중년 가정부, 조각을 그리고 있다. 2. (과거) 초등학교 앞 / 낮 등교하는 아이들 사이로 역주행 하며 뛰고 있는 도영. 친구 (돌아보며) 야, 깡통, 어디가? 도영 실내화 가지러! 도영, 친구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후다닥 뛰어간다. 3. (과거) 강도영의 집 / 낮 덜컥! 현관문이 열리고 도영이 들어선다. 현관 입구에 놓인 신발주머니를 잽싸게 주워드는데, 집 안에서 정체모를 신음소리가 들린다. 이상한 느낌에 천천히 집안으로 발을 들이는 도영. 우뚝 멈춰 선다. 도영의 하얀 양말 앞으로 검붉은 피가 번져오고 있다. 눈을 부릅뜬 채 거실에 쓰러져 있는 도영의 아빠. 숨이 멎은 머리 주변에 피가 흥건하다. 도영 아... 아빠? 겁에 질린 도영,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울먹이는데 베란다 창을 향해 서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열린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긴 머리칼 아래로 허리에 로프를 묶고 있다. 오줌줄기가 도영의 바지를 타고 내린다. 창피함에 얼굴이 붉어지는데, 순간, 비녀를 단정하게 꽂아 고정하며 도영 쪽을 돌아보는 여자. 나지막이 입을 열어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도영, 얼어붙은 채 벌게진 눈으로 입술 모양을 읽어내려고 애쓰는데... 휙! 열린 창으로 낙하하더니 그대로 사라지는 여자. 망연자실한 도영, 뺨 위로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펑! 도영 아빠의 얼굴 위로 터지는 플래시. 4. (타이틀 시퀀스) 어딘가, 자료실 / 밤 눈을 부릅뜬 죽은 도영 아빠의 사진이 되어 파일에 꽂혀 있다. 이내, 촤르르 파일이 넘겨지고, 젊은 시절 조각의 활약상과 함께 각양각색의 포즈의 시신 사진들이 연달아 보인다. 탁, 닫히는 파일. 표지에는 <조각 Ⅲ 1995~2004>라고 적혀 있다. 이때, 툭, 뭔가 떨어진다. 보면, 주민등록증이다. 집어올리는 한 1 엔진 이성규 남자의 손. 이내 일렬로 놓여지는 각종 위조 신분증. 여자의 노화과정이 한 눈에 보인다. 그 마지막 사진이 서서히 변하면서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은 60대 초로의 노인으로 바뀐다. 제목, <파과> 뜬다. 5. 지하철 / 밤 퇴근길, 꽉 찬 객차 안. 경로석에 앉아 지퍼식 성경에 돋보기를 대고 읽고 있는 조각. 주름이 내려앉은 얼굴 위 반백의 머리를 비녀로 단정히 고정하고 있다. 임산부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날카로운 외침에 돌아보는 사람들. 일수가방을 든 50대 남자가 임산부석에 앉은 여자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며 시비 중이다. 일수남 뭘 꼬나봐? 어른이 서있는데 퍼뜩 안 인나고. 어디서 휴대폰이나 쳐보는 척 쌩까고 지랄이여, 지랄은. 임산부 아저씨 저 임산부예요. 이 자리. 임산부 배려석이고. 일수남 애는 뭐 혼자 만들어? 통닭이니 족발이니 있는 대로 처먹어서 뱃때지에 기름통이 낀 건지 알게 뭐여. 까봐 한 번. 확인 좀 해볼라니까. 임산부가 주변을 둘러보지만 모두들 구경만 할 뿐,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조각은 성경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데... 책 사이에 꽂힌 작은 한 장의 사진, 일수남의 얼굴이다. 임산부 임신했다고요! 저쪽 임산부석에 아저씨도 있는데 왜 저한테만 그러세요. 예? 임산부에 의해 지목당한 중년 샐러리맨이 민망한지 고개를 숙이고.,, 일수남 요 되바라진 년 보게? (밀고) 어데서 눈깔을 까대고 달려들어? 야! (밀고) 요즘 년들은 결혼도 안 해, 애새끼도 안 낳아. (밀고) 남자 등골이나 뽑아 처먹으려고 하고 아주 지 편할 때만 임신 타령이지. 일수남이 손가락으로 계속 이마를 밀치자, 창에 뒷머리를 찧은 임산부, 모멸감에 눈이 벌게지는데... " 다음 정차할 역은... " 안내방송이 들려오기 시작하자 옆에 앉아있던 중년여성이 임산부를 이끈다. 중년여성 새댁. 그만하고 가자. 가요. 응? 임산부 이런 꼴을 당하고 어떻게 그냥 가요! 2 엔진 이성규 중년여성 뱃속 아기한테 험한 꼴 보여줄 필요 없잖아. 자... 얼른. 치익, 문이 열리고, 중년 여성에 이끌려 내리는 임산부. 끝까지 일수남을 쏘아본다. 아랑곳없이 두 자리를 턱 차지하는 일수남, 자신을 흘기는 주변에 대고 소리친다. 일수남 뭘 봐, 이씨! 눈도 못 마주치는 병신 새끼들이... 열차가 출발하자, 이내 눈을 감고 수면모드를 취하는 일수남. 승객들도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그제야 고개를 드는 조각, 잠시 일수남 쪽을 보며 비녀로 올려 묶은 머리 쪽으로 손을 올린다. CUT TO.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일수남, 약수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울리자 깜짝 놀라 깨더니 사람들을 밀치고 출입문으로 향한다. 조각도 성경을 닫고 일어나 일수남 뒤에 선다. 아까와는 달리 조각의 머리가 풀려 있다. 지하철이 정차하고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일수남도 플랫폼에 발을 딛는데, 갑자기 가슴께를 움켜쥐며 그대로 멈춰 선다. "안 내려요? 비키세요! " 마음 급한 승객들, 일수남을 밀치며 마구 엉킨다. 그사이 조각은 유유히 하차하고, 일수남은 경직된 채 이리저리 치이며 승강장으로 툭 밀려 내려오는데... 퍽! 스포츠백을 메고 뛰어오던 남자의 가방에 치여 허리를 꺾으며 털썩 주저앉는다. 남자가 "어... 죄송" 하는데, 거품을 물며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는 일수남. 사람들이 놀라 비명을 지른다. 후다닥 공익, 일수남을 뒤집는데, 동공이 열린 채 파랗게 굳어 있다. 6. 지하철 로비, 화장실 안팎 / 낮 좌변기 칸에 들어선 조각, 비녀에 달린 녹색 장식을 누르자 비녀의 끝에서 뾰족한 침이 튀어나온다. 휴지를 말아 독과 핏자국을 신중하게 닦아내고 변기에 버린 후 물을 내린다. 비녀의 침 위에 뚜껑을 덮는데, 갑자기 왼쪽 팔에 경련이 온다. 조각이 고통스럽게 팔을 부여잡는데, 그 바람에 비녀 뚜껑이 떨어져 칸 밖으로 굴러나간다. 이때, 지지직- 경찰 무전기 소리가 들려온다. " 지금 도착했고요. 감식반은 아직요. " 이어 화장실 문을 칸칸이 열어보는 소리에, 움직임을 멈추는 조각. 여경이 발 앞으로 도르르 굴러온 뚜껑. 여차하면 처리할 생각으로 가슴 속 칼집에 손을 가져다 대는 조각.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잠시 긴장이 스친다. 여경이 조각의 칸에 노크를 하려는데, 문이 탁 열린다. 비녀로 머리를 단정하게 올린 조각이 서 있다. 여경 (뚜껑을 내밀며) 아, 여기요. 조각 (미소) 고마워요. 3 엔진 이성규 평범한 할머니 모습으로 나서는 조각. 다급하게 플랫폼으로 뛰어내려가는 구급대원을 지나쳐 태연하게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7. 남양추모공원 / 낮 노인들의 영정 사진들 사이에서 박사모를 쓰고 환하게 웃고 있는 30대 여자, 민서영의 사진이 튄다. 최씨 그럼, 고인 가시는 길, 저희가 편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장례지도사로 보이는 최씨(남, 60대)가 운구 카트의 관을 화장로 안으로 옮기는 사이, 홀로 민서영의 영정을 든 홍여사(여, 70대)가 휠체어에 넋이 나간 채 앉아 있다. 잠시 후, 6번 화로 위로 불이 확 오르자, 모니터에 <故人 민서영 화장 중>이라는 알림이 뜬다. 홍여사가 겨우 참고 있던 울음을 확 터뜨리며 오열을 시작한다. 아까부터 물끄러미 보고 있던 최씨가 홍여사에게 다가와 커피가 담긴 종이컵 한 잔을 건넨다. 최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겄습니다. 홍여사가 고개를 들어 최씨를 멍하니 바라본다. 8. 골목 / 밤 전선들이 얼기설기 얽힌 좁은 주택가 골목을 걷는 조각. 9. 조각의 집 / 밤 자켓과 니트를 벗어 식탁 의자에 대충 걸어두는 조각. 칼집이 매달린 가죽 홀스터를 맨 그녀의 뒷모습은 60대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하다. 스탠드 하나만 켜져 있는 어두운 방. 조각이 책상에 앉아 일지를 쓰고 있다. <... 편도훈, 52세, 전과 17범. 9명을 자살시킨 악성 사채업자, 지하철 3호선 약수역, 복어독 테트로도톡신 80ml 주사, 쇼크사 유도... > 잠시 떨리는 손을 만져보는 조각. <...손 떨림이 심해진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일지 기록이 끝나자 서랍에 넣고 자물쇠를 채운다. 10. 도로 / 낮 4 엔진 이성규 한적한 도로 위, 차 한 대가 달리고 있다. 뒷좌석에 가운데에는 복면을 뒤집어쓴 호리호리한 남자가 양옆에 앉은 위협적 체구의 검은 양복남들 사이에서 벌벌 떨고 있다. 복면남 그, 근데... 많이 아픈가요? 그 왜... 산 채로 막 배 째고 그러던데... 양복남 에이, 이 사람이! 요즘 그러면 큰일나. 인권단체에서 얼마나 말이 많은데. 우린 소독도 확실하고, 마취약도 수입산으로 쓴다니까? 중국산이지만... (손가락으로 배를 푹 찌르며) 여 흉터 안 남게 이쁘게 꿰매드릴 테니까 걱정마시고. 복면남 (화들짝) 네? 네! 아... 알겠습니다. 그저 배 꾹 찔렀을 뿐인데 으악! 엄청나게 겁먹은 듯 버둥거리는 복면남. 11. 주택가, 작업장 / 낮 어둑한 공간 한쪽, 장기밀매업자 구사장(남, 40대)이 고급 샐러드를 먹으며 중개업자와 통화 중이다. 구사장 아씨, 요즘 통나무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갑자기 이렇게 훅 들어와! 몰라. 눈깔 한 짝 포함해서 3장! 그 이하는 안 돼. 오케이? 전화를 끊자, 복면남을 데려온 양복남이 들어와 준비됐다는 듯 고갯짓한다. 구사장 안경 썼냐? 양복남 아뇨. 구사장 5장으로 불러야겠네. 가벽 뒤로 나타나는 구사장과 수하. 간이 수술실이 차려져 있다. 복면남 앞에 선 구사장. 휙, 복면을 벗기는데... 말간 피부의 미남이 조심스럽게 눈을 뜬다. 투우(남, 30대 초반)다. 긴장한 채 주변을 둘러보는데, 조악한 수술용 침대와 투박한 날붙이들이 가득하다. 구사장 아니, 이 와꾸로 여길 왜 오셨어? 너무 아까운데. 투우 아... 안녕하세요... 저 근데... 코... 콩팥 하나에... 5천, 맞죠? 구사장 바로 캐시로! 근데 혹시 각막도 팔 의향이 좀 있으신가? 투우 네? 갑자기...요? 구사장 아니. 나도 참 난감한데. 갑자기 클라이언트가 애걸복걸을 하니까. 응? 내 지인도 일전에 하나 뽑혔는데 하등 지장 없어, 잘 살아! 투우 그럼... 한 짝에 얼마 주실 건데요? 5 엔진 이성규 구사장 어휴, 화끈하네! 큰 걸로 1 개 더 얹어드릴게. 어때? 투우 1억? 그건 좀... 그런데... 구사장 응? 투우 봐봐. 평생 애꾸 신세인데, 1억 5천 갖고 뭘 해? 안경값도 엄청 올랐는데 눈깔은 왜 아직도 10년 전이냐고. 구사장 허, 재밌는 친구네. 그래! 좋다! 화끈하게 2개 맞춰드릴게! 투우 10. 구사장 10억? 투우 구성식. 니 목 따고 받을 돈이 10억이라고. 눈빛이 돌변하더니 왼쪽 수하1의 목젖을 팔꿈치로 가격하는 투우. 오른쪽 수하2가 달려들자 확 뒹굴어 피하고 뒤 수술대 근처의 메스를 집어 수하2의 심장에 박는다. 켁켁거리던 수하1이 칼을 꺼내 던지려는 순간, 한발 먼저 수술용 가위를 집어 확 던지는 투우. 수하1의 목젖에 꽂히자 피를 뿜으며 쓰러지고, 이어 순식간에 구사장 뒤에서 목을 겨누는 투우의 칼. 벌벌 떨며 양손을 드는 구사장. 구사장 너... 너 뭐야. 누가 보냈어! 투우 얼마 전에도 눈깔 하나 뽑았다며? 남의 손님 삥땅해서. 구사장 대... 대림동 그 박사장 새끼야? 투우 그러게 왜 새치길 해갖구. 구사장의 오른팔 겨드랑이에 칼을 꽂아 넣는다. 비명을 지르는 구사장. 투우 여기도 신경이 꽤 모여 있다고 하더라. 아파? 구사장 아아악! 사... 살려줘... 투우 미안한데 그건 어떻게 하는지 몰라. 내가 아는 방식은... (칼을 더 깊이 찌르며) 천천히~ 고통스럽게. 아다지오 그라베! CUT TO. 잠시 후, 투우가 빈 기름통을 손에 든 채 뚜벅뚜벅 걸어나온다. 한가롭게 담배를 피고 있던 운전기사. 누군가 담배를 툭 빼앗자, 깜짝 놀라 돌아보는데... 퍽! 투우가 기절한 남자를 차에서 끌어내고 빼앗은 담배를 작업장 쪽으로 던진다. 순식간에 화염이 인다. 12. 도로 / 낮 6 엔진 이성규 투우의 차가 건물을 벗어나 도심으로 합류하는데, 창 너머로 응시 중인 한 사람. 장비(남, 50대)다. 이윽고 장비의 차가 투우의 뒤를 따른다. 도로를 따라 은밀히 미행하는 중, 투우의 차가 우회전하여 한적한 골목으로 진입한다. 장비의 차도 서서히 골목으로 진입한다. 헌데, 순간 온데간데 보이지 않는 투우의 차. 장비가 투우의 차를 찾는 듯, 다급히 골목을 주행하는데... 부아앙! 갑작스런 엔진 소리에 장비가 고개를 돌리는데... 콰광! 필로티 기둥에 숨어 있던 투우의 차가 급발진해 운전석을 들이받았다. 펑! 에어백이 터지는 장비의 운전석. 차에서 내린 투우가 장비의 차로 다가선다. 장비가 도어캐치를 당겨보지만, 투우의 차에 막혀 열리지 않는다. 여유롭게 담배를 꺼내 무는 투우. 투우 아저씨, 불 좀. 장비 (라이터를 건네며) 역시 눈썰미가 좀 있구만. 투우 (불 붙이며) 어이구, 소문 듣고 오셨어? 장비 스카우트 제의라고 해두지. 순간, 투우가 단검을 꺼내 목을 겨냥한다. 하지만, 당황하기는 커녕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 장비. 날선 눈으로 보던 투우, 흥미로운 듯 장비의 얼굴에 후- 연기를 뿜어댄다. 투우 나 되게 비싼데~ 괜찮겠어요? 13. 신성방역 앞 / 낮 조각이 K마트 건립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은 재래시장을 지난다.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서자 낡은 주택가가 보인다. 끝 쪽에 오래된 단독주택을 개조해 와인바로 만든 건물이 보인다. 입구에 선 조각, 지문 인식을 찍고 들어서는데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진동한다. 14. 신성방역 / 낮 전체적으로 어둑한 가운데 몇몇 업자들이 각자의 테이블에 흩어져 홀짝이고 있다. 한쪽 벽면에 위치한 바 스툴에 심드렁하게 앉은 투우. 정갈한 차림의 손실장(남, 40대)이 글라스에 와인을 채우고 있다. 손실장 끌로드 뒤가, 샤름 샹베르땡 2006년 산. 특별한 손님한테만 내주는 겁니다. 투우 뜸들이는 거 질색인데. 투우가 일어서려하자, 그 앞으로 사진 한 장이 툭 던져진다. 투우가 의뢰인에게 전송했던 불타는 폐주택 사진이다. 7 엔진 이성규 손실장 반포 큰손 한사장, 동탄 재건축 윤조합장, 통나무업자 구사장까지. 손이 아주 야무지던데? 길바닥 패싸움에 쓰기엔 좀 아깝지 않나. 투우 내 사생팬이신가? 스토킹에 재능이 있으시네. 손실장 광팬이죠. 그 스페인 투우사처럼, 타켓 주위를 서서히 맴돌면서 정신부터 서서히 갉아먹어서 미쳐버리기 직전에 본색을 드러내고, 최후의 순간까지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잔혹하게 작업을 하신다고... 투우가 피식 웃으며 고쳐 앉는다. 이때, 조각이 모자를 눌러쓴 채 통화를 하며 와인바로 들어선다. 안에 있던 업자들이 일어나 예를 갖춘다. 조각은 눈길도 주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장비) ... 좀만 더 기다릴걸. 신입하나 픽업해주고 나오는 길인데, 손실장이 찍어둔 애가 있더라구. 대답 대신 바 테이블 쪽에 등지고 앉은 투우 쪽을 흘깃 보는 조각. 손실장도 까딱 목인사를 한다. (장비) 아, 그리고 산세베리아는 쉽다니까. 꽃도 피고, 물도 1년에 두 번만 주면 되고. 초보용으로 완전 대박인데, 조각 시끄러. (장비) 하, 누님 진짜! 맨날 씨뻘건 것만 보는 사람들인데, 초록색도 보고, 어? 그러면서 딴 세상도 보고, 어? 조각 그 따위에 정 쏟을 거면 잠이 더 자 둬. (장비) 암튼, 회사에 맡겨 놨으니까 꼭 좀... 뚝, 전화를 끊어버리고 벽에 걸린 그림에 터치하는 조각. 공간이 스르륵 열리며 계단이 나온다. 계단 밑 내실 앞에 서서 CCTV를 향해 고개를 드는 조각, 철컥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선다. 첨단 장비가 세팅된 책상에 앉은 초엽(여, 20대)이 반긴다. 그 앞에 수기로 된 서류를 툭 내려놓는 조각. 초엽 매번 방역 보고하느라 왔다갔다, 안 귀찮아요? 어플로 딱딱하면 끝나는 건데. 대모님만 유독 이래. 어휴, 이걸 또 언제 다 입력해... (지하철 사망 사고 기사를 검색하며) 뒤처리는 꼼꼼히 했죠? CCTV나 목격자, 의심되는 건 없으시고? 조각 (빤히 쳐다보면) ... 초엽 (화들짝) 아니, 그게, 의뢰인도 좀 그런 게, 조용한 데 놔두고, 하필 그 사람 많은 데서 보란 듯이 처리해 달라니까. 조각 걱정마. 밥벌레 취급당하기 전에 알아서 떠난다. 초엽 뭘 또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그리고 가실 때 화분 좀 갖구가세요. 8 엔진 이성규 저 진짜 똥손이에요. 저거 죽을까봐 조마조마하다니까. 땐땐하게 나오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초엽. 테이블 구석에 놓인 산세베리아 화분을 힐끗 보더니 한심한 듯 외면하고 나가버리는 조각. 바에 있는 투우는 잔을 빙글빙글 만지기만 할 뿐, 입도 대지 않는다. 손실장 암튼, 이 금싸라기 터가 참 오래됐습니다. 40 년도 넘었죠. 싹 헐어버리고 번듯한 새 집을 짓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투우 프롤로그 됐고, 본론 뭐냐니까. 손실장 한마디로, 의미 없는 살인 말고, 명분 있는 방역에 그 실력 좀 써보자는 거지. 투우 방역? 뭐 벌레라도 잡으라는 건가? 손실장 그쵸. 인류 사회를 좀 먹는 바퀴 같은 존재들. 그것들을 박멸하고 고통받던 선량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 투우 아이고. 거절하면... 그냥 보내주나. 손실장 우리 업무 특성상 보안이 생명이라. 잘 알면서... 투우가 잠시 낄낄거리더니 순식간에 손실장의 목을 낚아채 와인 오프너를 겨눈다. 손실장 역시 재밌네. 투우씨. 재빨리 주변을 살피는 투우, 업자들 수와 거리를 헤아린다. 날 선 눈으로 이쪽을 보는 업자들. 팽팽한 긴장감 가운데, 씨익 웃더니 와인 오프너를 내려놓는 투우, 손실장을 풀어주곤 양손을 머리 위로 든다. 투우 일단 여긴 유머 감각이 바닥이라는 건 알겠고... 갑작스러운 태세전환에 의아해진 손실장, 보면, 가려진 뒤편으로 투우의 경동맥 쪽에 날카로운 비녀가 겨누어진 상태다. 조명이 닿지 않는 그늘에 조각이 서 있다. 손실장 아직 어려서 장난 좀 친 것 같은데 봐주시죠. 조각 이런 근본없는 놈까지 받아야 될 정도로 망가진 건가? 건조한 조각의 목소리에 투우의 눈빛에 미세한 동요가 인다. 자신을 돌아보려는 투우의 머리를 잡아 고정시키며 비녀를 더 깊게 누르는 조각. 흥미롭다는 듯 투우 얼굴에 떠오른 미세한 변화를 캐치한 손실장, 그러나 내색없이 조각을 향해 말한다. 9 엔진 이성규 손실장 아이고, 우리 조각 대모님은 이제 좀 쉬엄쉬엄 하셔야죠. 거친 일은 젊은 애들한테 맡기고. 투우 (잠시 멈칫) 황송하게도 실물 영접인가. 항복 제스처 그대로 홱, 손아귀에서 몸을 빼내는 투우, 조각의 얼굴을 향해 몸을 돌리려는 찰나... 이미 비녀를 거두고 문쪽을 향하는 조각. 다시 비녀로 머리를 올려 꽂는 뒷모습만 보일 뿐이다. 투우의 시선으로, 하얀 목덜미, 그리고 그 위에 비녀로 단정히 고정되는 그녀의 머리칼이 보인다. 바 조명에 역광으로 보이는 조각의 뒷모습은 실루엣에 가깝다. 투우,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는데... 손실장 좋은 술은 오래될수록 맛이 익는데 사람은 아무리 전설이라도 끝이 있게 마련이죠! 혹시 압니까? 투우씨가 새로운 전설이 될지... 투우, 손실장을 빤히 보다가 와인잔을 들고 음미하듯 한 모금 마셔본다. 투우 맛이, 나쁘지 않네요. 손실장 전 최고만 선택하거든요. 손실장이 악수를 청하지만 받지 않는 투우.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이다. 15. 거리 / 밤 간단한 찬거리가 든 봉지를 들고 상가 거리를 지나는 조각. 그때, 손 하나가 그녀의 팔로 다가오는데, 조각이 반사적으로 이를 뿌리친다. 20대 네일샵 직원이 방긋 웃으며 넉살 좋게 전단지를 내민다. 직원 아, 오픈 행사하거든요. 회원권 끊으시면~ (조각의 손톱을 살피더니) 어머, 어머니 고생 좀 하셨나보다. 제가 금방 새 손톱으로 바꿔 드릴게. 조각 난 그쪽 어머니 아닙니다. 차갑게 뿌리치며 멀어지는 조각. 16. 조각의 집 앞 / 밤 여느 때처럼 파란 대문 앞에 멈춰서는 조각. 주위를 살핀 후 키를 꽂고 문을 열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신음소리가 들린다. 숨을 죽여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조각. 보면, 담벼락 코너에 노견 한 마리가 10 엔진 이성규 낑낑대고 있다. 다리를 다쳤는지 피가 흥건하다. 제 상처를 핥던 노견이 조각을 빤히 바라본다. 잠시 보던 조각, 이내 무심히 고개를 돌려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선다. 17. 조각의 집 / 밤 루틴처럼 옷을 벗고, 칼집을 내려놓고, 식사를 하고, 턱걸이를 하고, 오래된 VHS 영화를 보는 조각.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 조각. 적막한 분위기를 뚫고 창밖으로 낑낑대는 소리가 흘러 들어온다. 그 소리에 뒤척이는 조각, 모로 누워 보고 바로 누워 봐도 잠이 들지 않는다. 하릴없이 눈을 뜨는 조각. 18. 신성방역 앞 / 밤 와인바의 외부 간판이 꺼지고, 이윽고 손실장과 초엽이 나와 방범장치를 켜고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멀리서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시선, 투우다. 지 중 변압기 앞에 서서 주변을 살피더니, 능숙한 솜씨로 변압기의 문을 따 는 투 우 . 손목시계의 타이머를 10분으로 맞추고, 변압기에 연결된 복잡한 전선 중 하나를 니퍼로 탁! 자르자, 순식간에 주변 가로등과 아파트, 빌라 등의 불이 꺼지며, 주변이 암흑이 된다. 와인바 주변도 암흑천지인 상황. 투우가 CCTV의 레코딩 불빛이 꺼진 것을 확인하고는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 환풍기를 뜯어내고 와인바 안으로 잠입하는데 성공한다. 19. 신성방역 - 자료실 / 밤 건물 안으로 들어온 투우가 빠른 속도로 지하로 내려간다. 전원은 차단되어 CCTV는 들어오지 않지만, 지하 사무실의 출입구는 자물쇠로 잠겨 있다. 투우, 자물쇠를 따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시계를 바라보는 투우, 7분이 남은 상황. 천장을 바라보는 투우, 천장은 석고텍스로 마감되어 있다. 투우, 의자를 밟고 석고텍스를 뜯는다. 석고텍스 위로 40cm 가량의 공간을 발견하고는 포복을 시작하는 투우. 전선과 각파이프, 곳곳에 튀어나온 나사들로 쉽지 않다. 천장에 설치된 환풍구 아래로, 손실장의 방이 보인다. 품속에서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꺼내 환풍기 안쪽,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하는 투우. 다시 포복을 이어가고 한 지점에 다다라 시계를 확인한다. 6분이 남은 상황이다. 주변을 둘러보고는 각파이프에 체중을 의지한 채, 밑에 있는 석고 텍스의 귀퉁이를 가볍게 내려치자 툭 하고 빠진다. 투우가 빈 공간으로 고개를 내밀고 플래시를 비추면, 랙이 빼곡히 설치된 자료실이 드러난다. 좁은 틈 사이로 몸을 비집고 자료실로 뛰어내리는 투우. 빠른 속도로 렉을 뒤진다. 낡은 문서철들이 선반에 빼곡히 꽂혀 있다. 16-25년 전 자료는 플로피 디스크. 도트 프린트 문건. 25년 이상 자료는 갱지에 수동타자기, 수기, 세로쓰기, 한자, 일어까지. 그 외 카셋트 테이프, VHS, 슬라이드 필름 등 상당한 기간의 자료가 쌓여 있다. 시계를 확인하는 투우. 4분이 남았다. <1996년~2000년> 이라고 적힌 선반을 발견한 투우, 오래된 서류철과 출력물 사이에서 문서철 하나를 11 엔진 이성규 집어든다. 훅, 일어나는 먼지들. 플래쉬를 입에 문 채,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는 투우. 문득 멎는 손길. <방역보고서, 1998년 4월 25일> 속에 강종선, 복성건설 사장의 가족 사진이 보이고, 의뢰인(심교언, 부동산 업자 등)의 정보와 업자(조각) 정보가 보인다. <조각> 두 글자에 시선이 멈춘 투우. 20. 동물병원 / 밤 야간진료 간판이 달린 동물병원의 자동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서는 조각. 품에 노견을 안고 있다. 무료하게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여, 20대 중반)가 놀라 일어선다. 간호사 어서오... 어머! 선생님, 응급이요! 21. 신성방역 앞 / 밤 뜯어진 환풍기 사이로 밖으로 나오는 투우, 다시 환풍기를 제자리에 고정시켜 놓고 대로변으로 발걸음을 옮겨 세워둔 오토바이에 올라타며 손실장에게 전화를 건다. 투우 새 집 지으시는데, 힘 좀 보태보죠, 뭐. (손실장) 아이고, 잘 선택하셨습니다! 투우가 전화를 끊자, 순간, 타이머가 낮은 비프를 울린다. CCTV의 전원이 켜지고, 주변 가로등과 아파트, 빌라의 조명들이 파바박! 일제히 다시 켜진다. 부웅 출발하는 투우. 22. 동물병원 / 밤 수술실 알림창에 <검사 중>이라는 표시가 떠 있다. 대기실에 앉아있는 조각, 조용히 병원 내 구조를 파악하고 있다. 그때, 수술실 문이 열리며 선한 인상의 강박사(남, 40)가 마스크를 벗으며 다가온다. 강박사 아, 기다려셨죠? 어려운 일 하셨네요. 다친 애들 보면 측은지심은 들어도, 막상 내 손에 피 묻히면서 구조하는 건, 쉬운 일 아니거든요. 조각 그럼 이제 가보면 됩니까...? 강박사 근데 워낙 노견이라... 이런 애들은 보호소에도 잘 안 받습니다. 입양도 안 되고 결국 안락사될 가능성이 높거든요. 조각 ... 강박사 (조심스레) 그래서 말인데, 어르신께서 직접 전화 한 통 넣어주시면... 조각 예? 강박사 구조하신 분이 직접 연락하면, 거절을 잘 못하거든요. 12 엔진 이성규 조각 (빤히 보며) 원래 이런 일까지 합니까? 강박사 아, 늙고 병들었다고 버림받는 거. 잔인하잖아요. 이미 한번 버림받은 아이인데... 선한 미소가 마음에 스미지만, 외면하고 일어서는 조각. 이때 간호사가 다급히 달려온다. 간호사 선생님! 지혈이 안 돼요. 강박사 그럼, 일단 수술부터 합시다. 준비하세요. 간호사 또 사비로 수술비 메꾸시려고요? 강박사가 꾸벅 인사하고 뛰어나가자, 홀로 남겨진 조각. 문득, 거울에 늙은 제 모습이 비추인다. 조용히 나가던 길. 수술실의 분주한 모습 사이로 베드 위의 헐떡이는 개와 눈이 마주치는 조각. 23. 투우의 집 / 밤 한적한 야외 외곽 주차장. 캠핑 트레일러들이 여러 대 주차되어 있다. 가장 구석에 있는 카라반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내리는 투우. 그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다. 그들 중 할리 복장의 한 이웃이 반갑게 손인사를 하자, 꾸벅 인사를 후 카라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안에는 세간이 잘 갖춰져 있고 명품 옷들이 잔뜩 걸려 있다. 보다만 두꺼운 책들이 어질러진 침대 위로 털썩 눕는 투우. "이제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할까... " 라고 중얼거리더니, 벌떡 일어나 침대 밑에서 꺼낸 노트를 펼친다. 가운데 끼어 있던 색연필로 처음 본 조각의 뒷모습을 빠르게 휘갈긴다. 멋진 솜씨다. 24. 치매 노인의 집 / 낮 남루한 거실. 휠체어에 탄 치매노인(남, 80대)이 꺽꺽대며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보호사 아 지독한 노인네. 어따 숨겨 놓은 거야. 방에서 문갑을 뒤지고 있던 요양보호사(여, 40대)가 거슬린다는 듯 씩씩대며 다가와 노인 입에 밥을 틀어넣는다. 노인이 제대로 못 받아먹고 흘리자 거침없이 뺨을 후려치는 보호사. 보호사 처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고! 하지만 노인은 손을 떨며 힘겹게 자신의 국부를 가리킨다. 바지에 대, 소변을 지린 채다. 13 엔진 이성규 보호사 (코를 막으며) 아 냄새! 씨발. 야! 보호사가 노인을 거칠게 잡아 끌자 저항도 하지 못하고 끌려온다. 옷도 안 벗기고 노인을 그대로 욕조에 쳐 넣는 보호사. 물을 받기 시작한다. 차가운 물에 비명을 지르는 노인. 보호사 시끄러. 똥오줌 싼 벌이야. 욕조에 물이 점점 차오르고, 그대로 밖으로 나가는 보호사. 점점 물이 차오르자 꺽꺽대는 노인. 보호사는 아랑곳없이 문갑을 다시 뒤지기 시작한다. 문득, 보호사의 손끝에 낡은 반지케이스 하나가 걸린다. 서둘러 케이스를 열자 낡은 금반지 하나가 들어 있다. 이를 깨물어 금인지 확인하고 신나게 품에 챙겨 넣는 보호사. 그 사이 의식을 잃어가며 물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할아버지. 25. 도로, 차 안 / 밤 아무도 없는 도로. 재가노인요양센터의 랩핑이 붙은 경차가 신호에 걸려 멈춘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며 운전중인 보호사. 핸들에 얹힌 손가락엔 노인의 집에서 훔친 금가락지가 끼워져 있다. 손을 들어 가락지를 살펴보는데... 문득 블랙박스의 전원이 꺼져 있는 것이 보인다. 보호사 이게 왜 빠졌대. 보호사가 손을 뻗어 블랙박스의 전원선을 잡으려는 순간, 스윽 뒷좌석에서 올라오는 장비. 보호사 아악! 누구세요? 장비 (목에 칼 들이밀며) 조용히 운전해. 보호사 왜, 왜 이러세요...? 돈요? 아님, 뭐든...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장비 그 노인들도 니가 시키는 대로 다 했을텐데, 왜 죽였어? 보호사 죽이긴 누굴요? 혹시, 박경복 할머니 때문에 그러세요? 그 건 경찰에서도 무혐의 처리된 건데요. 장비 차라리 경찰한테 벌을 받지 그랬냐. 보호사 .....? 26. 철도 건널목 / 밤 한적한 철도 건널목. 보호사의 차가 멈춘다. 조수석의 보호사는 의식을 잃은 상태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장비가 운전석에서 내린다. 보호사를 운전석으로 옮기고 빈 술병을 조수석에 던져 놓는 장비. 14 엔진 이성규 저 멀리, 기차의 불빛이 보이고 알림음을 울리며 건널목 차단기가 내려온다. 장비가 운전석의 문을 닫고 차단기 밖으로 나오는데, 철도 건널목 건너 자전거를 탄 여고생이 자신을 보고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문득 멈춰서는 장비의 얼굴에 미소가 인다. 장비 (반갑게) 은서야! 야 장은서! 건널목을 건너가려는 장비. 그때, 빠앙! 기적이 울리며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화물 기차. 놀란 여고생, 멀뚱히 장비를 쳐다보다 차 안으로 시선을 옮기는데 핸들에 엎어진 보호사가 그제야 시야에 들어온다. 장비가 계속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 사이 기차 소리는 점점 요란해지고, 끼이익 브레이크를 밟아 불꽃을 일으키는데, 여고생, 기차와 자동차를 번갈아 보다 놀라 입을 가린다. 순간 콰앙! 기차가 차를 박고 그대로 밀고 나간다. 기차 칸 사이로 여고생의 얼굴이 다시 드러나는데, 얼굴이 아까와 다르다. 장비의 얼굴에서 점점 미소가 사라진다. 꺄악! 비명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도망치는 여고생. 27. 조각의 집 / 낮 외출 준비를 마친 조각이 현관으로 나선다. 그 소리에 자고 있던 개가 달려와 바짓단을 물고 늘어진다. 조각 어이구. 아침부터 정신 사납게. 붕대 주변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다 무심코 밥그릇을 본다. 굳은 사료 몇 알이 남아 있다. 조각 너도 내 나이 돼봐라. 깜박깜박하지. 밥그릇을 새로 채워주는 조각. 굽힌 무릎을 일으켜 세우는데 우두둑 관절에서 소리가 난다. 쾅! 문을 닫고 나서는 조각. 몇 발짝 못 가 갸웃 돌아선다. 조각 가만… 보일러… 껐나… 다시 집안으로 들어와 보일러 버튼을 보는 조각. 꺼져 있다. 28. 마트 / 낮 매대에서 <시니어 전용>이라 쓰인 개사료를 고르고 있는 조각. 계산대의 작은 TV에선 철도에서 박살난 차를 배경으로 기자가 리포팅 중이다. 15 엔진 이성규 (기자) ... 목격자에 의하면 범인은 이곳 교차로에 차를 정차시키고, 기차가 오는 걸 알면서도 의식 없는 피해자를 방치한 채 혼자 내렸습니다. 조각이 계산대에 사료를 올려놓자 TV에 집중한 채 사무적으로 바코드를 찍는 계산원. 계산원 3만5천원입니다. 조각 (주머니를 뒤지는데, 아차 또...) 아, 죄송합니다. 지갑을 놓고 와서… 계산원이 짜증을 내는 사이, TV 소리에 신경이 쓰이는 조각. (기자) 용의자는 목격자를 쫓아 이곳 지구대 앞까지 왔다가 외부 CCTV에도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피해자의 차량 동선 등을 토대로 5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용의자의 신원확보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화면에는 헐레벌떡 지구대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여고생이 보이고, 이어 빠르게 쫓아왔다가 지구대 건너편에서 주춤 멈춰서는 한 남자가 보인다. 경찰이 뛰쳐나오자 황급히 돌아서는 남자. 어둠 속 실루엣이지만 딱 봐도 장비다. 표정이 굳는 조각. 29. 신성방역 / 낮 손실장 앞에 선 장비,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손실장 현 시간부로 자격을 박탈하고, 장비에 대한 모든 기록은 말소됩니다. 장비 ...뭐? 손실장 사유는 본인이 더 잘 아실 테고, (여권과 항공권을 주며)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잘 모셔다 드려. 대기하던 업자 두 명이 팔을 잡자 뿌리치는 장비, 잠시 쏘아보더니 그대로 나가버린다. 손실장이 고갯짓하자 업자들이 따라나간다. CUT TO. 모니터 위, 촤르륵 지워지는 장비 관련 정보들. 이때, 초엽에게 전화가 온다. 공항으로 장비를 수행하던 업자의 다급한 목소리다. 통화를 하는 초엽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장비가 탈출하고 잠적한 것이다. 16 엔진 이성규 30. 신성방역 +조각의 집 / 낮 조각은 새로 사온 사료를 그릇에 부어 개에게 먹이고 있다. 한편, 초엽은 난리난 기사와 SNS 창을 심각하게 보고 있고, 손실장은 굳은 얼굴로 조각과 통화 중이다. 손실장 ... 룰대로 조치하겠습니다. (조각)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손실장 방역에 평생을 바친 형님이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저라고 맘 편하겠습니까? 하지만, 창립 이래 첨으로 우리가 노출될 수도 있는 위기입니다. 여기서 더 터지면 돌이킬 수 없죠. 사람 붙이겠습니다. (조각) ... 그렇다면 내가 하겠네. 손실장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지만... 툭- 전화가 끊긴다. 전화기를 손에 든 채 생각에 잠기는 손실장. 구석 소파에 무심히 죽치고 앉아 두꺼운 책을 보고 있던 투우, 빙긋 웃으며 관심을 보인다. 투우 전설의 양반이 직접 나서시나 보네. 초엽 괜찮을까요? 대모님이 장비 아저씨랑 지낸 세월이 있는데... 손실장 (잠시 생각하고) 아무래도 투우 씨, 첫 임무가 생긴 것 같네. 전화를 끊은 조각은 부상이 완쾌되지 않는 개를 보며 한숨을 짓는다. 31. 동물병원, 진료실 / 밤 울타리의 강아지들을 살피고 있는 강박사. 그 뒤로 문이 열리고 노견과 함께 온 조각이 보인다. 강박사 어? 오셨어요. (긴장) 무슨 문제라도... 조각 며칠 집 비울 일이 좀 있어서. 강박사 아, 네. 잘 오셨어요. (신청서를 건네며) 우선 이거 하나 써 주세요. (개를 살피며) 어디 보자, 상처는 잘 아물고 있고. 배변교육은 돼 있던가요? 조각, 묻는 말엔 대답없이 지갑에서 오만원권 여섯 장을 꺼내 내려놓는다. 조각 부족하면 데려갈 때 계산합시다. 강박사 이것도 너무 많아요. 데려가실 때 차액 환불해드릴게요. 그리고요. 17 엔진 이성규 조각 …? 강박사 애만 챙기지 마시고, 어르신도 식사 잘 챙겨 드세요. 저번보다 살이 더 빠져 보이세요. 꼭 입니다. 낯선 이의 친절함이 거북한지 차갑게 돌아서는 조각. 조금 민망해지는 강박사. 휑하니 떠나는 조각의 자취를 보다가 문득 신청서를 보는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다. 강박사 에고, 어디 보자... 좋은 분 만났으니까. 이름칸에 <럭키>라고 적는 강박사. 럭키는 조각이 나간 문쪽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32. 교회, 예배당 / 밤 연단에서 설교 중인 지두하 목사(남, 70대), 강렬한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하고 있다. 지목사 ...모두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는 하나님의 뜻이요, 구원이고 부활의 시 작입니다. 다만 우리의 죄가 정결함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의 욕망을 몰아내고 죄악의 속박에서 벗어나 기꺼이 심판과 형벌의 사역을 안고 천국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설교에 "할렐루야! 아멘! " 합창하는 열혈 신도들. 한쪽 구석, 사람들과 떨어진 기둥 뒤에 서늘한 눈빛의 장비가 앉아 있다. 지목사의 기도를 들으며 분노로 부르르 떨리고 있는 장비의 손. (손실장) 장비한텐 자살한 딸이 있습니다. 고약한 목사놈한테 혹사 당했더군요. (투우) 명색이 업잔데 그냥 보고만 있었다? (손실장) 사적인 일로 칼 뽑고 그러면, 방역과 살인의 경계가 무너지지 않겠습니까? 그때, 스윽. 인기척도 없이 어디선가 나타난 조각이 장비한테서 살짝 떨어져 앉는다. 의식하지 않는 듯, 강단을 보고 있는 두 사람. 장비 누님이 거두러 오셨소? 영광이구만. 조각 너 답지 않게, 왜 그랬냐. 장비 ... 분명 우리 은서였소. 날 보고 웃는... 조각 (지그시 눈을 감는다.) 장비 잠 좀 자라고? 어떻게 자? 눈만 감으면 생생히 보이는데. 18 엔진 이성규 초점 없는 장비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흐른다. 어느새 예배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지목사도 강단에 연결된 통로로 자취를 감춘다. 장비 얌전히 갈게. 어차피 누님이 그렇게 해줄 거잖아. 근데... 아직은 아냐...! 마지막으로... 조각 원칙을 잊었는가? 살인은 절대 금한다는 걸. 그때 퍽! 장비의 거대한 주먹이 조각의 얼굴로 날아든다. 하지만 조각이 번개같이 반응하여 이를 막아내는데, 충격에 움찔하는 사이. 장비가 지목사가 사라진 쪽으로 달려나간다. 장비를 잡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고뇌하는 조각. 조금씩 숨이 거칠어지며 왼팔에 경련이 시작된 조각, 팔을 틀어쥔다. 33. 교회, 복도 / 밤 휴대폰을 꺼내 들고 텅 빈 2층 생활관 복도를 걷고 있는 지목사. <중등부 보나♥>를 찾아 전화를 건다. 몇 번의 통화음 후 전화를 받는 보나. (보나) (말이 없다) ... 지목사 우리 보나. 전화 반갑게 받아야지? (보나) (처진 목소리) 아... 목사님 안녕하세요... 지목사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프니? (보나) 아뇨. 그냥 감기가 좀... 지목사 그게 다 몸이 차서 그래. 오늘 서방님이 우리 보나 따뜻하게 해줘야겠다. 그치? (보나) (난감한 듯) ...아, 저 괜찮... 지목사 보나야. 세상의 모든 섭리는 누구 뜻? 전부 하나님의 뜻이야! 오늘 보나가 아픈 것도, 마침 이렇게 전화를 건 것도 말야. 그런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면, 어떻게 된다고? 인자했던 표정이 일순간 변해 권위적으로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 뒤로 소리 없이 나타나는 발걸음, 장비다. 지목사를 향해 숨죽이며 다가오고 있다. (보나) (겁에 질려)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지목사 그렇게 되고 싶은 거냐? (보나) 아, 아뇨! 19 엔진 이성규 지목사 그럼 당장 나오거라! 만족한 듯 미소 지으며 전화를 끊는 지목사. 뒤를 밟던 장비가 칼을 뽑아 드는데, 갑자기 친교실의 문이 열리며 우르르 나오는 신도들. 장비가 얼른 기둥 뒤로 몸을 숨긴다. 장로 목사님, 사거리 고깃집에 암소 좋은 놈 들어왔답니다. 지목사 아, 그래요? 빨리 다녀오죠. 시계를 보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지목사, 신도들과 함께 이동하며 멀어지는데... 타탓. 반대편 복도의 끝에서 조각이 나타난다. 앞쪽은 신도들, 뒤쪽은 조각. 사면초가에 일그러지는 장비. 조각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는데, 이를 꽉 깨문 장비가 지목사를 향해 뛰는가 싶더니, 열려 있는 창으로 몸을 날려버린다. 조각, 내다보면, 장비, 날렵하게 바닥을 구르더니 주차장으로 내달리고 있다. 조각도 훌쩍 창을 뛰어넘어 벽을 타고 내려간다. 헐레벌떡 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장비. 뒤늦게 도착한 조각도 차에 올라타서 추격을 시작한다. 34. 도로 / 밤 어두운 외곽 도로를 질주하는 장비, 백미러를 바라보면... 끈질기게 쫓아오고 있는 조각의 차가 보인다. 둘 간의 간극이 점점 줄어 든다. 앞선 차들을 위태롭게 헤집으며 가속하는 장비. RPM이 요동을 친다. 조각도 따라잡지만, 앞선 몇 대의 차를 피하느라 쉽게 격차를 줄이지 못한다. 그때 앞에 나들목이 보인다. 조각이 핸들을 확 틀어 도로를 빠져나간다. 장비가 다시 백미러를 보는데 조각의 차가 사라졌다. 뒤를 살피며 안심하는 장비, 앞으로 내지르는데 잠시 후 빠른 속도로 차 한 대가 장비 앞을 가로막는다. 조각이 저지대의 나들목을 이용해 장비를 앞지른 것. 끼익! 조각이 급브레이크를 밟자, 후미의 긴박한 브레이크 등에 급정거를 하는 장비. 차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휘청이며 쿵! 그대로 가드레일을 뚫고 국도 아래 비탈길로 굴러 떨어진다. 35. 제방, 저수지 / 밤 급정거 후 차에서 내리는 조각. 제방 아래 반파된 채 뒤집힌 장비의 차가 보인다. 깨진 차창 밖으로 장비의 팔이 축 늘어져 있다. 잠시 고민하더니 칼을 주머니에 넣고 비탈을 내려가는 조각. 차 안을 보면, 장비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코에 손을 대보는데, 숨이 느껴지지 않는다. 흔들리는 눈빛의 조각, 장비의 끌어 차에서 빼내기 시작한다. 힘겹게 다 끌어낸 순간, 탁! 조각의 발을 낚아채는 손길. 살아있다! 순간, 잡아당기는 장비의 힘에 뒤로 벌렁 넘어지는 조각. "흐억! " 등에 뾰족한 돌이 박히자 옆으로 구르며 신음을 내뱉는다. 그 사이 장비가 순식간에 올라타 조각의 목에 칼을 들이댄다. 장비 대모님... 그냥 가시오. 부탁이오. 20 엔진 이성규 조각 날 죽이고 가 보든가. 장비 내가 대모님 못 죽일 거 같아요? 못 죽일 거 같냐고오오! 순간, 퍽! 옆에 놓인 돌멩이로 장비의 머리를 올려치는 조각. 머리를 감싸며 나뒹구는 장비.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칼을 뽑는 조각. 장비가 괴성을 지르며 칼을 휘둘러대고, 조각도 맞서기 시작한다. 덜덜 떨리는 조각의 왼손을 발견한 장비. 장비 그... 고장난 몸으로... 될 것 같아? 흥분해서 달려드는 장비. 조각이 빈틈을 발견하고 장비의 목을 향해 칼을 날리자, 장비가 기다렸다는 듯 옆으로 피한 뒤 칼을 휘두르는데... 허공이다. 그 사이 조각의 오른손에서 떨어진 칼을 왼손이 받고, 장비의 배를 푹 찌르는 조각. 으윽, 신음하는 장비, 배를 움켜쥐는데... 조각 흥분하면 안 된다고 했지? 시야가 반은 줄어든다고! 장비, 주춤거리는 듯 하더니 조각의 허리춤을 붙잡고 밀어붙인다. 힘에 밀려 차에 처박히며 쓰러지는 둘. 조각이 재빨리 장비 위에 올라타 목에 칼을 겨눈다. 조각 제발... 여기까지만... 그러나 장비는 포기하지 않고 바닥의 흙을 쥐더니 뿌려버린다. 조각이 시야가 잠시 가려진 사이 장비가 조각을 뒤집고 올라타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장비 곧... 나도 따라갈테니까... 발버둥쳐보는 조각. 하지만, 꿈쩍앉는 장비. 조각의 몸에서 힘이 점점 빠지는데... 갑자기 장비의 손에 힘이 풀리며 무릎이 꺾인다. 등에 칼이 꽂힌 채 쓰러지는 장비의 뒤로... 투우가 보인다! 투우 명줄 참 질기네. 투우가 장비의 심장에 칼을 꽂으려 다가가는데, 팔을 낚아채며 막아서는 조각. 조각 누구야 너. 투우 우리 본 적 있는데? 조각 ... (그제야 알아보고) 비켜. 내 일이야. 21 엔진 이성규 투우 내 일이기도 해. 조각 손실장이 보냈나? 투우 본인 일을 똑바로 하셨으면... 이렇게 나설 필요도 없었을텐데? 투우가 힘을 주는데 조각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젊은이의 완력에 당하지 못하고 투우의 칼날이 점점 장비에게 가까워진다. 그때 퍽! 조각이 니킥으로 투우의 복부를 강타한다. 순간의 충격에 투우의 힘이 빠지고, 그 틈을 타 조각이 칼을 빼앗는데 성공하며 장비 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투우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조각의 등을 밀친다. 그 덕에 조각이 쥔 칼이 장비의 심장을 찌르고 만다. 조각 장비...! 투우 하면 이렇게 잘 하시면서. 장비 ...화... 화분... 챙기셨소? 물... 많이 주면 안 돼... 겨우 한 마디 내뱉고 털썩! 늘어지는 장비. 눈도 감지 못한 채... 투우 생각보다 많이 늙으셨네. 조각 ....!? 투우 마무리는 잘 하시고. 그쪽 일이니까. 유유히 오토바이에 올라타서 멀어지는 투우. 조각, 장비의 뜬 눈을 쓸어내린다. 36. 추모공원 / 밤 화구에 올려지는 바디백. 포대를 벗기려는 최씨를 담담하게 말리는 조각. 최씨 오메? 이 양반이 왜... 조각 그냥 태워. 그 정도는 해주고 싶은 사람이니까. 최씨 그려. 잘 모시겄소. 이어 검은 봉투에서 장비가 신던 가죽 신발을 꺼내며 혀를 차는 최씨. 최씨 흐미... 나가 꺼죽은 잘 안 탄다 혔어, 안 혔어요. (피묻은 돌을 올리며) 뭐여, 이것은 전연 안 타부는디? 조각 지천이 돌인데, 대충 지져서 뿌려둬. 최씨 징허네. 이거는 청구서를 따블로 올려야겠소잉. 22 엔진 이성규 장비의 시체와 신발, 조각의 혈흔이 묻은 돌까지... 소각로로 들어간다. 최씨 근디 초엽 갸는 삯을 무슨 나락 털대끼 후려칭게... 옛날에 아조 깔끔혔는디... 안 그려요? 조각 또 연락하겠네. 조각이 뒤돌아서자 등에 배어 나온 핏자국이 보인다. 최씨 아이고, 세월에 장사 없다고. 대모님도 인자 쉴 때도 되았제. 잠시 멈춰 돌아보는 조각. 화구 속에서 타오르는 장비를 잠시 보더니 이내 돌아선다. 37. 도로, 차 안 / 밤 조각의 시야가 흐릿해지며 위태롭게 차선을 넘나든다. 식은땀을 흘리며 스륵스륵 감겨오는 눈을 치뜨는 조각, 맞은편에서 오던 차가 하이빔을 켜며 경적을 울리자 조각이 가까스로 피한다. 등 뒤 상처에서 흐른 피가 고여 옷이 묵직하다. 그때 눈앞에 졸음쉼터가 보인다. 길가에 차를 멈춘 조각. 대시보드를 열자 소독용 알콜과 의료용 스테이플러가 나온다. 팔을 등뒤로 비틀어 환부에 에탄올을 뿌리자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온다. 티칵- 티칵. 스테이플러를 집어 환부를 봉합하려 하는데 팔이 닿지 않아 스테이플러 심이 자꾸 빗나간다. 38. 도로 / 밤 다시 이를 꽉 물고 새벽길을 내달리는 조각. 길가에 불 켜진 큰 병원이 보이는데도 이를 쌩하니 지나친다. 시장가를 지나 한 블록 너머 조각의 집 동네가 보이자, 속도를 높이는 조각. 앞에 교차로가 보인다. 청신호가 바뀌기 전에 빠르게 지나치려는 조각. 허나, 횡단보도 앞에서 갑자기 끼이이익- 급정거를 한다. 차 앞으로 길을 건너던 고양이 한 마리가 조각을 잠시 노려보다 원래 가던 길을 유유히 간다. 식은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조각. 문득 백미러 저 너머로 불이 켜진 동물병원이 보인다. 39. 동물병원 / 밤 강박사 그렇지. 아이구 어르신, 응가~ 강박사가 배변패드 위에 앉아있는 럭키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헌데 갑자기 배변패드를 23 엔진 이성규 벗어나 쪼르르 창가로 달려가는 럭키. 창 너머를 보며 낑낑대며 안절부절 못한다. 강박사 왜, 뭔데 그래? 그때, 강박사의 시선에 길 건너에 정차된 차가 보이고, 어렴풋이 경적소리가 이어진다. 40. 동물병원 앞 / 밤 강박사가 길을 건너 차의 운전석 쪽으로 다가간다.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이지만, 어두운 썬팅 탓에 잘 구분되지 않는다. 차창 안을 자세히 보다가 놀라는 강박사. 핸들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사람. 조각이다! 강박사 (창을 두드리며) 어르신? 아무런 반응이 없자, 강박사가 다급히 차 문을 여는데, 그대로 쓰러지듯 품으로 넘어지는 조각. 순간 느껴지는 이상한 감촉에 보면, 손에 흥건히 피가 묻어 있다. 놀란 강박사가 얼른 휴대폰을 꺼내 119에 전화를 거는데, 탁. 손을 쳐서 휴대폰이 떨치는 조각. 조각 (힘겹게 고개 저으며) 괘... 괜찮아. 괜찮으니까... 강박사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지금 피가 이렇게...! 얼른 병원부터... 조각 병원은 안 돼...! 하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조각. 41. 동물병원 / 밤 서서히 눈을 뜨는 조각. 주변을 살펴보는데, 낯설다. 팔에 꽂힌 링거가 시야에 들어온다. 게다가 상반신 옷이 벗겨진 채 남자 옷이 걸쳐져 있다. 제 몸을 만져보는데, 붕대만 만져질 뿐 허전하다. 홀스터가 없어진 것. 당혹스러운 조각.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데 때마침 강박사가 들어와 지긋이 어깨를 누른다. 강박사 움직이지 마세요. 임시방편으로 처치한 거라... 순간, 링거병을 낚아채 깨뜨리고 강박사를 벽에 밀어붙여 깨진 병을 목에 들이대는 조각. 조각 무슨 수작이야! 강박사 (침착하게) 우측 활배근에 창상을 포함한 열상 10센티 상처인데, 24 엔진 이성규 장기 근처라 조금만 깊었어도 지금 저 못 보셨을 겁니다. 조각 내 물건은? 강박사 걱정 마세요. (서랍장 쪽 보며) 저기 잘 챙겨 놨으니까. 조각 어디? (돌아보는데) 강박사 아, 이게 뭡니까... 가뜩이나 출혈이 큰데. 덥석 자신의 손을 잡아내리는 강박사. 당황하는 조각. 칼에 베인 손의 상처가 벌어져 다시 피가 흐르고 있다. 강박사가 알코올 솜과 붕대로 조각의 손을 처치한다. 물끄러미 보는 조각. 강박사 각자 사연이 다 있는 거죠, 뭐. 조각 ... 강박사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이때, 밖으로 누군가의 인기척 소리가 들려온다. (경찰) 수고하십니다. 여기... 신고가 들어와서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당황하는 조각, 후다닥 손을 빼며 벽면으로 숨는데... 당황한 강박사가 모르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강박사에게 나가보라고 고갯짓 하는 조각. 급하게 수술실을 나서는 강박사. 조각, 살짝 밖을 내다보는데, 2명의 경찰이 간호사에게 뭔가를 묻고 있다. 강박사가 합류하자, 수술실 쪽을 번갈아보며 대화가 이어진다. 경찰1 폭력 피해자가 있으시다고? 어디 계세요? 강박사 막 수술 끝나서... 경찰1 어? 피네요. 강박사 아, 그건 강아지 피인데요.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을 발견한 경찰1이 서둘 러 수술실로 향한다. 낭패다! 난감한 조각. 진료실 뒤편에 직원 출입문이 있지만 경찰을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 문득, 심장제세동기가 눈에 띈다. 메스에 소독 솜을 두르고 제세동기 코드와 함께 플러그에 삽입하는 조각. 순간, 퍽! 병원 전체에 불이 나가버린다. CUT TO. 덜컥, 차단기가 올라가고 불이 켜지며 강박사의 얼굴이 보인다. 텅 빈 수술실에서 나오는 경찰들. 수술실 복도 끝에 있는 비상구 문이 살짝 열려 있다. 하지만, 강박사만 눈치챌 뿐. 창 너머 조각의 차가 25 엔진 이성규 출발하는 것이 보인다. 옅은 한숨을 내쉬는 강박사. 42. 동물병원 앞 / 밤 점점 멀어지는 조각의 차의 뒷모습, 후미등이 점점 붉은 점으로 바뀐다. (경찰) 저 혹시... 조각의 차를 바라보고 있는 투우 시점에 불쑥 들어오는 인물들. 경찰 1, 2다. 경찰 60대 할머니 못 보셨어요? 투우 글쎄요. 못 봤는데? 경찰2 아, 예. 그럼 수고하십쇼. 경찰들이 떠나자 동물병원 쪽을 돌아보는 투우. 창 너머로 로비의 핏자국을 닦고 있는 강박사가 보인다. 갸웃하면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투우. 43. 투우의 집 / 새벽 카라반의 문이 열리고 투우가 들어선다. 테이블에 앉아 그림일기를 쓴다. 장비에게 죽을 뻔한 조각의 모습이다. 그러다 문득 휴대폰을 꺼내 <조각>을 검색해본다. <재료를 새기거나 깎아서...>, <방해하거나 물리침...> 등이 뜨는데, 마지막에 있는 <짐승의 발톱과 뿔이라는 뜻으로,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해주는...>에 눈길이 간다. 일어나 벽면의 커튼을 열어보는 투우. 강종선 방역결과를 비롯해 그간 조각이 행한 수많은 방역 관련 자료들과 노화과정이 담긴 증명사진 출력본 등이 붙어 있다. 투우 기억도 못하는 게... 44. 조각의 집 / 새벽 낡은 단층 가옥 안으로 새벽 여명이 스며든다. 겉옷 그대로 소파에 잔뜩 웅크린 채 잠든 조각, 고통스러운 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럭키는 아파하는 조각의 주변에서 안절부절 낑낑대고 있다. 그 소리에 잠을 깨는 조각, 감은 눈으로 럭키를 쓰다듬는다. 그러자 럭키가 소파로 올라와 코를 묻고 비벼댄다. 말도 안 통하는 늙은 개의 몸짓이 묘하게 위로가 된다. 조각 (쓰다듬으며) 괜찮다. 이 정도에 죽을 목숨이면 지금껏 버티지도 못 했어. 26 엔진 이성규 45. 동물병원, 진료실 / 새벽 퇴근 준비를 하는 진료실의 강박사, 조심스럽게 칼집을 보관했던 서랍을 열어보는데, 칼집 대신 5만원권 지폐 몇 장이 놓여 있다. 조각의 낯선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기는 강박사. 46. 신성방역 / 낮 조각을 마주한 손실장. 앞에 놓인 중국요리를 부지런히 떠먹으며 두툼한 봉투를 쓰윽 건넨다. 손실장 이번 달 칩니다. (조각이 봉투를 챙겨 바로 가방에 넣자) 확인 안 해보셔두 돼요? 조각 어련히 넣었겠지. 아냐? 손실장 그니까요. 적립금도 꼬박꼬박 모아두고 있으니까 걱정마시고. 조각 안 물었어. 손실장 ? 조각 내 돈 안 떼먹고 간수 잘 하고 있는지 안 캐물었다고. 당황해하는 손실장의 눈을 노려보는 조각. 손실장 흠. 좀 드시지 왜. 조각 그렇게 내가 못 미더웠니? 등대를 붙여? 손실장 아... 그거야 대모님을 지키고 싶었던 거고. 우리 에이전시의 소중한 자산이 아닙니까, 전설인데. 조각 장비는 니 애비 시절부터 함께 한 사람이야. 손실장 그니까 솔직히 흔들렸잖아요. 아닙니까? 조각 ... 손실장 어떤 경우에도 사적인 감정보다 신성방역을 최우선으로 삼아라! 여기 물려받았을 때, 대모님이 해주신 말씀인데... 뭐, 맘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시면, 조각 됐다. 마음도 못 다스릴 거면 은퇴해야지. 단호하게 일어서서 나가버리는 조각. 손실장 노인네, 이제 진짜 갈 때가 됐구만. 27 엔진 이성규 47. 약국 / 밤 약국 데스크 앞에 서있는 조각. 젊은 여성 약사가 거즈, 붕대, 에탄올 등을 봉투에 담아 내미는데... 문득 조각의 눈에 약사의 손톱이 들어온다. 잘 가꾸어진 손톱 위에, 펄이 들어간 글로시한 매니큐어가 튄다. 약사 8700원입니다. (조각은 대답없이 물끄러미 손톱을 보고 있다) 저... 손님? 조각 (그제야) 아... 예. 조각이 만원을 건네자, 약사가 건네받는데, 지폐의 양귀퉁이로 여기저기 깨진 조각의 상처투성이 손톱과 잘 관리된 약사의 손톱이 대비된다. 어딘가 초라함을 느끼는지 황급히 주머니에 손을 넣고 돌아선다. 48. 조각의 집 / 밤 대문 앞의 조각, 문을 열려고 키를 꽂는데, 안에서 럭키가 짓는 소리가 들린다. 경계하는 조각. 가슴 속의 칼을 잡으며 조용히 들어서는데, 럭키가 쪼르르 달려와 집 쪽을 보며 짖는다. 숨죽이고 안으로 들어서는 조각,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진 냄비 틈으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린다. 조각이 서서히 가스레인지 쪽으로 다가가는데... (투우) 아픈 사람이 어딜 그렇게 돌아다녀? 그 소리와 함께 조각의 팔에 다가오는 손길. 그 팔을 확 낚아채 되치는 조각. 투우다! 조각 뭐야 너. 투우 아악. 놓고 좀... 조각 뭐하는 짓이냐고! 투우 ... 팔 괜찮은가 싶어서. 칼을 비트는 게 영 시원치 않으시던데. 손이 저려, 왜 그래? 조각이 투우의 팔을 떨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식탁에 털썩 앉는다. 투우 식사 안 하셨지? 잠깐만. 전복죽 끓였어. 28 엔진 이성규 투우가 가스레인지로 다가가 불을 끄고 냄비를 식탁 위로 옮긴다. 뚜껑을 열자, 수증기가 확 퍼지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전복죽이 보인다. 앞 자리에 앉으며 그릇에 옮겨 담는 투우. 투우 냉장고에 김치쪼가리 하나도 없고, 대체 뭘 먹고 사는 거야? 자 얼른 뜨세요. 내장도 갈아넣어서 먹을 만할 거야. 순간, 팍- 조각이 접시를 바닥에 내동댕이 쳐버린다. 조각 무슨 생각이냐. 내 집에서 나가. 당장. 투우 좀 야박하네. 아, 장비랑 가족 같은 사이였다며. 오히려 내가 나서준 게 고마운 거 아닌가? 조각 혼자 완료할 수 있었다. 투우 동료를 죽인 적은 없던데? 눈을 찌르거나 팔을 잘라 은퇴시켰어도. 백퍼 못 죽였어. 자기가 죽었으면 죽었지. 조각 우리 일을 왜 방역이라고 하는지 아니? 죽이는 게 아니라 지키는 것. 우린 최소한 그런 절박함으로 모인 사람들이야. 오래 버티고 싶으면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마라. 포기한 듯 일어서며 한숨을 내쉬는 투우. 투우 죽을 뻔한 노인네 밥 굶고 있을까봐 걱정해서 왔는데... 멀쩡하네. 하긴 치료까지 받았으니까. 응? 조각 !!! 투우 그것도 동물병원에서. 개같이 누워서. 조각 악취미가 있구만. 투우 경찰도 왔었지? 운 좋게 빠져나오신 거 같던데... 서늘해지는 조각. 투우 장비가 왜 죽었는지... 본인이 더 잘 알지? 회사가 알면 골치 아프니까, 알아서 처신해. 서늘한 미소를 날리고는 밖으로 나가는 투우. 조각의 눈빛이 복잡하다. 49. 도로 / 새벽 29 엔진 이성규 워크맨 헤드폰을 쓰고 헤비메탈을 들으며 오토바이를 내달리는 투우. 서글픈 표정이다. 50. 동물병원 앞 / 새벽 다른 날. 비가 내리는 새벽의 동물병원, 야간 근무를 마친 강박사가 병원에서 나와 길을 걷는다. 길 건너 후미진 곳에서 몸을 숨긴 채 이를 보고 있던 조각이 조용히 뒤를 밟기 시작한다. 51. 강박사의 집 앞 / 아침 아파트 입구에서 강박사가 딸 해니(여, 7세)의 손을 잡고 뛰어나온다. 강박사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반찬 골라 먹지 말고. 알았지? 해니 오케이! 노란 유치원 버스에 탑승하는 해니. 강박사가 엄마들 틈에 끼여 차창을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든다. 조각이 멀리서 보고 있다. 52. 대학병원 앞 / 낮 대학병원의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강박사.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거린다. 건너편 편의점에서 지켜보고 있는 조각. 53. 과일가게 앞 / 낮 트럭에서 박스를 내리고, 아담한 과일가게의 매대에 과일들을 정리하는 강박사. 능숙한 모습이다. 조각은 소란스러운 시장 골목 한 귀퉁이에서 몰래 지켜보고 있다. 그때, 조각의 앞을 스쳐가는 꼬마 아이, 해니다. 외할머니인 윤여사(여, 60대 중반)의 손을 잡은 채다. 문득 한 중년여성이 윤여사를 툭 치며 아는 체 수다를 시작한다. 그 사이 해니가 강박사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윤여사의 손을 놓는다. 해니 아빠아아아! 하지만, 해니의 소리는 어물전 상인의 우렁찬 호객소리에 묻힌다. 그때, 한 사내가 박스를 키만큼 높게 쌓은 핸드카트를 밀면서 뛰어가는 해니 쪽으로 다가온다. 사내는 박스에 가려져 해니가 보이지 않고, 해니 또한 아빠에게 정신이 팔려 정신없이 뛰고 있다. 불안하게 휘청이는 카트와 해니가 부딪힐 일촉즉발의 위기. 그때 휙! 어느새 나타난 조각이 해니를 안고 구른다. 순간 어어어! 하더니 넘어지는 카트. 와장창! 갑작스러운 소란에 윤여서와 강박사가 돌아본다. 보면, 해니가 조각의 품에 안겨 있다. 30 엔진 이성규 깜짝 놀란 해니가 울음을 터뜨리고, 사색이 되어 달려온 강박사가 조각에게서 해니를 와락 떼어낸다. 강박사 강해니! 54. 과일가게 / 낮 평범한 손님인 냥 스툴에 앉은 조각. 윤여사가 차를 대접하며 과일도 골라보라고 권하고 있다. 조각 요즘은 뭐가 맛있나...? 윤여사 복숭아가 제철이라 꿀맛이에요. 조각 그걸로 주세요. 윤여사 (봉지에 담으며) 4개면 돼요? 조각 많은데. 조각이 봉지를 받으며 만 원을 건네자, 한사코 거절하며, 대신 한 개 더 담아서 내미는 윤여사. 윤여사 무슨 해니까지 구해줬는데, 요건 뽀나스요. 좀 오래되고 멍든 파과인데, 더 맛있다니까 아주. 안쪽에서 해니의 팔뚝에 약을 발라주고 있는 강박사. 밖을 힐끔 쳐다보면, 조각이 과일을 들고 돌아서며 벽에 붙은 그림을 보고 있다. 아빠의 손을 잡은 아이 옆에 하얀 날개옷의 엄마가 그려져 있다. 윤여사 일곱 살치곤 솜씨 좋죠? 조각 엄마는 천사인가 보네요. 윤여사 네. 하늘나라에 있으니까. 조각 아, 어쩌다가...? 윤여사 수술받다 허망하게 갔어요. 명색이 그래도 의사인데, 누구 하나 사과 한마디를 안 합디다. 죽어도 사과 받아낼 거라고, 아직도 가서 시위하고 있다니까요. 조각 아이고, 시간이 얼만데...? 다 아는 내용을 모르는 척 잘 받아주는 조각. 윤여사 그래도 그게 죽은 사람한테 예의라나 뭐라나... (안쪽의 강박사와 눈이 마주치자) 아이고, 별 소리를 다하네, 손님한테. 31 엔진 이성규 조각 잘 먹을게요. 윤여사 맛있게 드시고 또 오세요. 조각이 나갈 때까지 해니를 가리고 있는 강박사.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다. 해니 (천진난만하게) 왜? 강박사 응. 아니야. 55. 재래시장 / 낮 강박사가 다급하게 조각을 쫓아 온다. 사거리에서 조각이 보이지 않자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는데, 상점 사이 골목에 선 조각이 보인다. 긴장한 채 다가가는 강박사. 강박사 해니 일은 고맙습니다만... 왜 오신 거죠? 협박이면 저한테만 하세요. 가족은 상관 없잖아요. 조각 경찰을 불렀으면 알 텐데... 강박사 아, 그건 저희 간호사가 가정폭력 피해자로 오해해서... 조각 왜... 강박사 네? 조각 ... 그랬습니까? 강박사 아, 좋은 분 같아서요. 럭키가 치료받는 내내 지키더라구요. 걱정이 됐는지... 동물은 거짓말 안 하거든요. 조각 럭키? 강박사 아, 운이 좋은 아이 같아서. 조각 작명엔 재주가 없으시구만. 강박사 농담하신 거죠, 지금? 미소 짓는 강박사. 그제야 팽팽했던 긴장을 풀며 돈이 담긴 봉투를 돌려준다. 강박사 뵈면 드리려고 갖고 있었어요. 제가 받으면 불법이라. 조각 (안 받는다) 그럼 옷값으로 치고. 강박사 상처는요? 임시 처치라 좀 걱정되는데... 조각 (강박사의 친절이 계속 낯설다) … 강박사 병원... 왜 안 가세요? 조각 ... 짤릴까봐. 회사에서. 32 엔진 이성규 강박사 무서운 회사인가 보네요. 상처 도지면 들르세요. 옷값을 너무 많이 주셨으니까. 후미진 골목에서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검은 그림자, 투우다. 투우 뭐 하자는 플레이냐... 56. 조각의 집 / 밤 럭키한테 복숭아를 썰어주는 조각. 달콤한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조각의 손까지 핥아 먹는다. 조각 날 기다렸다고...? 럭키의 주름진 턱을 가만히 쓰다듬어주는 조각. 손끝으로 전해오는 생명의 온기가 따사롭다. 조각 럭키라고 하자. 그래, 니 이름. 럭키다. 밤바람에 흔들거리는 빨랫줄 위에 걸린 강박사의 옷을 조용히 바라보는 조각. 57. 동물병원 / 밤 막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 강박사 앞에 불쑥 나타나 자리에 앉는 투우. 여기저기 둘러보며 문득 구두끈을 푼다. 그래도 친절하게 맞이하는 강박사. 강박사 무슨 일로 오셨죠? 투우 가슴이 막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어서요. 강박사 ... 예? 투우 빨간색만 보면 막 흥분되고. 강박사 아, 심인성이면... 잘못 찾아오신 거 같은데요. 투우 여기 병원 아닌가? 강박사 네. 근데 동물병원이라서요. 투우 사람도 동물이잖아요. 강박사 그렇긴 한데, 제가 사람 진료는 못 합니다. 투우 이상하다. 사람도 보는 거 같던데...? 33 엔진 이성규 투우의 말에 살짝 당황하는 강박사. 투우가 손에 말아쥔 구두끈을 끝만 잡고 촤악 늘어뜨린다. 그때 간호사가 살짝 노크하고 들어온다. 간호사 아, 선생님. 빨리 회식 가셔야하는데… 투우 (혼잣말로) 운 참 좋네. (구두끈을 주머니에 넣고) 그럽시다. 좀 더 두고보죠. 투우, 강박사의 명함 한 장을 챙겨 나가버린다. 이상한 진상 손님이라며 곁눈질하는 간호사. 잠시 의아했던 표정을 푸는 강박사, 피식 웃어 넘기고 만다. 58. 신성방역 + 홍여사의 집 / 낮 휠체어에 앉은 홍여사. 줌 화면 너머로 눈가면을 쓴 손실장과 초엽을 마주하고 있다. 이미 눈물 콧물 다 쏟아낸 듯 휴지산이 쌓여 있다. 손실장이 화면에 띄워진 사진 한 장을 주시하고 있다. 어질러진 원룸, 술병과 주사기들이 널브러져 있고, 의식이 없는 듯 바닥에 늘어진 여자. 영정사진의 민서영이다. 홍여사 내 수양딸 서영이. 내가 애를 못 낳아서, 학대받고 버려진 아기를 입양했어. 정말 천사처럼 착한 애였어. 근데 이유도 모른 채 천식을 달고 살았지. 알고 보니 살포 농약 때문이었어. 그래도 씩씩하게 자랐고, 박사 학위를 2개나 땄고, 전세계에서 환경운동을 했어. 전라도가 GMO 종묘 사업 기지로 전락하는 거 막으려고 다국적 기업이랑 싸웠어. 지자체에 금권 개입한 증거 찾아내고 바빠졌다는 애가... 클럽 출입하다 마약중독으로 죽어? (치솟는 울분을 겨우 누르며) 4년 전에 친구 따라 간 클럽에서 비타민 주사를 맞았다더니… 점점 더 수렁에 빠졌고, 딥페이크 영상까지 돌아다녔대. 혼자서 막으려고 별짓을 다 했나봐. 연락이 끊기더니, 그 사이 수십 사채 억 빚에... 우리 앤 그저 너무 착했어. 손실장 아, 참.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왠지 난감해하는 손실장. 예상했다는 듯한 홍여사. 문득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23시 58분이다. 화면 위로 고창복 동영상이 띄워진다. 홍여사가 직접 대들며 찍다가 제지당한 듯한 영상이다. 홍여사 고창복. 이놈을 청소해줘. 초엽이 신속하게 대상자 신상을 검색하면, 스타트업 창업자이면서 실제는 가야 홀딩스 계열사 클럽 34 엔진 이성규 니키에서 활약하는 마피아 그룹의 조직원이라는 다양한 정보가 뜬다. 초엽이 고개를 젓는다. 손실장 근데, 클럽... 니키라... 홍여사 왜? 니키 뒷배가 가야 홀딩스라서 곤란해? 손실장 다 알아보셨네. 홍여사 거긴 기업화된 전국구 조직에다 검경까지 꽉 잡고 있다고. 손실장 뭐 복어 독주머니 같은 거죠. 잘못 따다간 팍! 홍여사 그러니까! 화장터 최씨가 그쪽 밖엔 없을 거라던데. 손실장 ... 거절하면 어쩌시려고. 직접 쳐들어가기라도 하시게? 홍여사 (피식) 무슨. 어차피 내 의뢰, 받을 수밖에 없어. 의아해하는 손실장. 홍여사가 스마트워치를 터치해서 보여주자, <녹음 중> 표시가 뜬다. 홍여사 튕기면, 당신들 정체, 세상에 오픈되니까. 손실장 그 전에 따님 뵈러 가실 텐데? 홍여사 우리 서영이 빨리 보면, 그것도 좋구. 근데, 어째? 클라우드에 실시간 싱크 중이고, 30분 단위로 연락 끊기면, 파일이 바로 뿌려지는데. 손실장 거기 방역 의뢰도 녹음돼 있을 텐데요? 홍여사 어차피 난 잃을 게 없어. 근데 그쪽은 다르지? 손실장 우리 홍여사님, 철두철미하시네. 홍여사 (손목시계를 보며) 10초 남았네. 손실장 액수는? 홍여사 부르는 대로. 9, 8, 7, 6... 점점 줄어드는 홍여사 손목시계의 초침. 침을 삼키는 손실장. 59. 조각의 집 / 밤 끼이익, 대문 열리는 소리에, 배를 깔고 누워있던 럭키가 번쩍 일어난다. 손실장에게 문을 열어준 조각. 손실장 고맙습니다. 늦은 시간에... 조각이 무심히 집안으로 들어서자, 뒤따라가는 손실장. 갑자기 컹! 컹! 럭키가 경계하고 막아선다. 손실장 식구가 있으신지 몰랐네. (쪼그려 앉으며) 착하지. 35 엔진 이성규 손실장이 건드리자 그르렁 이빨을 드러내는 럭키. 손실장, 움찔하며 중얼댄다. 손실장 개새끼... 지 주인이랑 똑 닮았네. CUT TO. 녹화된 화면을 보고 있는 조각. 맞은편 식탁에서 가늠하듯 보고 있는 손실장. 화면이 멈춰지고, 조각의 눈에 서럽게 울며 울분에 찬 홍여사의 얼굴이 크게 들어온다. 조각 ... 가야 홀딩스 전신, 가야 무역. 그때도 이 지랄 떨다가 결국 방역당했지. 거기 회장은 몰랐다는 이유로 겨우 목숨부지 했고...그 아들놈이 지금 중간 보스다. 옛날 은혜 생각해서 꼬리 하나만 잘라내는 거, 감사한 줄 알라 전해. 은혜고 나발이고 입 씻고 나오면 당분간 장사 접어야 할 거라고. 손실장 (반색하며) 오, 역시 살아있는 역사! 그럼, 맡아주시는 거죠? 조각 투우, 그 놈은... 손실장 아, 걘 2건이나 치렀고, 요즘은 개인적인 비즈니스가 있다나. 바빠요. 조각 ... 뭐 하던 종자인가? 손실장 왜요? 최씨 소개인데, 싹 털어봐도 깔끔한 친구던데. 조각 그냥 들어온 놈 아니다. 잘 봐둬. 손실장 어휴, 인제 동료로 좀 인정하시고 밥이나 한끼 해주세요. 손실장이 꾸벅 물러가고, 조각은 심란한 얼굴이다. 테이블 아래로 작은 도청 장치가 보인다. 60. 차 안, 복성건설 앞 / 밤 건설사 건물이 보이는 도로 건너편에서 잠복 중인 투우. 더 이상 대화가 들리지 않자 도청하고 있던 이어폰을 귀에서 뺀다. 흥미롭다는 듯 미소짓는데, 마침 지하 주차장에서 검은 차가 한 대 나온다. 기다렸다는 듯, 시동을 걸고 따라가기 시작하는 투우. 61. 해성 밀웜농장 / 낮 밀웜이 사육되고 있는 컨테이너 공장이 갖춰진 농장의 한 테이블. 손실장을 마주한 가야 홀딩스의 중간보스, 한성도 상무(남,50). 그 사이로 피를 흘린 채 누워 있는 사슴 한 마리가 보인다. 36 엔진 이성규 한성도 (시뻘건 사슴피를 건네며) 한 잔 해. 손실장 (종이컵을 받아들고) 아, 네. 한성도 내규대로 조치할 테니까. 그냥 조용히 넘어가지 그래? 손실장 아버지 말씀이 인간은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가 천지차이라고. 그러니까 화장실 가기 전 모습을 항상 기억하도록 해라, 그러셨죠. 손실장이 안주머니에 한성도 아버지의 비리 관련 옛날 사진 몇 장을 꺼내 내민다. 보더니 인상을 구기는 한성도. 기가 찬다는 듯, 컵을 들어 사슴피를 원샷하더니, 주변이 벌게진 입술로 일갈한다. 한성도 조용히 처리해. 대놓고 설쳤다간, 은혜고 뭐고 끝장이다. 한성도자 자리를 뜨자, 손실장도 억지로 사슴피를 마셔본다. 이내, 꾸엑-하고 뱉는다. 62. 조각의 집 / 낮 모자를 쓰며 막 외출 채비를 마친 조각. 럭키를 무릎에 앉히고 싱크대 쪽 살짝 열린 프로젝트창을 가리킨다. 조각 알지? 언젠가 내가 안 돌아오면, 절루 나가야 하는 거. 멍청하게 기다리다가 굶어 죽는 건 딱 질색이야. 새 주인을 찾든, 쓰레기통을 뒤지든, 어떻게든 살아. 개장수한텐 잡히지만 말고. 고개를 들어 조각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럭키. (조각) 근데 어느 날, 내가 누운 채로 안 움직이면, 그때도 절루 나가야 해. 조각의 상상. 안방 침대에 조각이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럭키가 조각 주변을 맴돌며 깨우는데, 전혀 반응이 없는 조각. (조각) 만일 저 문을 못 열면, 내 살로 잠시 배고픔을 달래도 좋아. 근데 냄새 때문에 사람들이 들이닥칠 거야. 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 계세요?" 하는 외침. 문이 열고 들어오는 경찰. 악취에 윽! 코와 입을 막는다. 조각의 시체를 뜯어먹은 개를 보고 놀란 경찰이 급히 무전을 친다. 37 엔진 이성규 (조각) 그러면 널 안락사 시킨다. 주인을 먹은 개는 병을 옮기거든. 뭣보다 니가 너무 늙어서 아무도 안 맡을 거야. 개나 사람이나 늙으면 처치 곤란의 폐기물이 되거든. 63. 복성건설, 주차장 / 밤 (조각) 그러니 때 되면 절루 나가. 알겠지? 그럼 다녀오마. 이어폰을 통해 조각의 음성을 조용히 듣고 있는 투우. 뭔가 서글픈 표정이다. 끼익- 탁! 조각이 대문을 닫고 나서자, 럭키의 낑낑 소리만 들린다. 그때, 저 앞으로 전날 본 검은 차량이 들어선다. 이어폰을 빼는 투우. 지정 주차칸에 주차하고 내리는 70대 남자, 심교언 회장이다. 기다린 인물이다. 예의주시하는 투우. 심회장이 비서실장의 수행에 따라 일반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회장실 전용 엘리베이터로 올라간다. 계획이 세워진 듯 흡족한 얼굴의 투우. 차를 몰아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64. 클럽 앞 / 밤 폐장 분위기의 클럽 앞. 한껏 차려 입은 클러버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멀끔하게 차려 입은 고창복이 부하들의 인사를 받으며 차에 올라탄다. (초엽) 딜 쳤는데, 업장에선 안 되고, 65. 고창복의 빌라 / 밤 도시가스 배관에 매달려 창 너머를 살피고 있는 조각. 집 안에서도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고창복. (초엽) 부하들 보는 데서도 말고, 꼭 혼자 있을 때만 작업하라는 조건입니다. 66. 편의점 / 낮 다 식은 꿀차가 담긴 종이컵을 쥐고 잠복 중인 조각. 창 너머 맞은 편 빌라 입구를 주시하고 있다. 노트에 무언가를 메모하고 있다. 이미 동선부터 일정 등 각종 정보가 빼곡하다. 이때, 지잉. 문자가 온다. 초엽이다. " 진행 상황 어때요? 벌써부터 전화 오고 난리예요. " 그때, 부아앙! 길 건너편에서 빨간색 포르쉐가 빠른 속도로 편의점 창 앞을 지나친다. 조각이 때를 맞춰 자리에서 일어나 편의점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포르쉐가 끼익 급브레이크를 밟더니 멈추고, 고창복이 운전석에서 내려 무단횡단하여 편의점 쪽으로 뛰어온다. 당황한 조각이 다시 몸을 돌려 편의점 안쪽으로 들어간다. 38 엔진 이성규 하지만 편의점 안이 좁아 은신할 만한 곳이 없다. 풍경소리가 울리고, 덜컥 열리는 편의점 문. 고창복이 들어온다. 몸을 돌려 다른 걸 찾는 듯 서있는 조각, 고창복이 조각을 스쳐가려는데, 통로가 좁다. "아이씨! " 짜증을 내는 고창복. 행여나 들킬까 숨을 죽이며 비켜주는 조각. 고창복 말보로 골드. 편의점주 육천오백원입니다. 카드로 결제하고 밖으로 나가는 고창복. 그제야 조각이 몸을 돌린다. 67. 편의점 앞 / 낮 편의점을 나오는 고창복. 조각도 뒤따라 나온다. 고창복의 뒤를 밟는 조각.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데, 고창복이 휙 무단횡단을 해버린다. 그때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 한 대가 고창복의 어깨를 살짝 친다. 고창복 아, 뭐야? 고창복이 신경질적으로 팔을 떨치며 폐지를 친다. 그 바람에 낡은 고무질이 풀리면서 상자와 스티로폼이 도로 한가운데로 쏟아져 내린다. 고창복 아 노인네들 진짜... 한마디 던지고 획 돌아서 차로 걸어가는 고창복. 조각이 따라가려는데, 도로를 점령한 폐휴지들. 노인이 리어카를 세우고 폐휴지를 줍기 시작한다. 양쪽에서 빵빵대며 난리가 난다. 상관없이 느릿느릿 폐지를 줍는 노인. 그 사이 차에 올라탄 고창복. 타겟과 노인 사이에서 갈등하다 잠시 멈춰서는 조각. 조각 아저씨! 리어카만 끌고 일루 오세요. 얼른. 노인이 어쩔 수 없다는 조각 쪽으로 건너온다. 무슨 일인가 싶은 편의점 점장이 나와서 구경한다. 차들이 슬금슬금 움직여 폐지를 그냥 밟고 지나간다. 조각이 도로로 뛰어들어 차를 막고 서둘러 폐지를 모으기 시작한다. 차들이 다시 빵빵거리고, 신문지 한 장까지 모아들고서야 자리를 비키는 조각. 그제야 차들이 조각을 위협적으로 스치며 휙휙 지나간다. 뒤늦게 빌라 쪽을 보지만 고창복은 이미 집으로 사라졌다. 낭패인 표정으로 이마를 쓸어 올리는데, (소리) 쯧쯧쯧 39 엔진 이성규 바로 근처에서 들리는 혀 차는 소리. 놀란 조각이 둘러보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주변의 CCTV. 서둘러 모자를 눌러쓰고 자리를 뜨는 조각. 한심하게 보고 있는 투우. 68. 골목길 / 밤 인적이 드문 새벽 거리. 노인이 빈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폐휴지를 줍고 있다. 멀찍이서 노인을 지켜보는 듯한 누군가의 시선. 노인이 리어카를 끌다 멈추고, 한쪽 구석에서 버려진 참고서를 줍는다. 그때, 검은 그림자가 노인을 확 덮치고 낮은 신음 소리가 터진다. 69. 조각의 집 / 아침 웅크리고 잠들어 있던 조각. 불길한 느낌에 와락 잠이 깬다. 손을 뻗어 칼을 움켜쥐고 방문을 여는데, 문을 두드린 건 럭키다. 배가 고픈지 낑낑댄다. 한숨을 내쉬는 조각. 보면 이미 늦은 아침이다. 70. 편의점 앞 / 낮 다시 편의점을 찾아온 조각. 주인 없이 세워진 노인의 리어카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늦춘다. 바닥엔 시신 표기가 그려져 있고, 부근엔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점장과 사복 형사 두 명이 주변 CCTV를 돌아보며 심각하게 대화 중이다. 긴장하는 조각. 그때, 부우웅 차 소리가 들린다. 반사적으로 돌아보는데, 고창복의 차가 느리게 지나면서 창 너머로 현장을 슬쩍 구경하다 조각과 눈이 마주친다. 살짝 갸웃하더니 이내 관심 없는 듯 창을 닫고 쌩하니 지하 주차장으로 향한다. 차를 응시하며 타이밍을 재고 있는 조각. 이때, 한 형사가 말을 걸어온다. 형사 실례합니다. 어르신, 몇 가지 여쭐 게 있어서요. 조각 근데 제가 지금 볼 일이... 형사 점장 말씀으론 아시는 분 같다고… 조각 아뇨. 어제 폐지가 쏟아져서 도와드린 게 전부입니다. 형사 그래도 일단 목격자시고 하니까. (수첩 내밀며) 연락처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조각 ... 어떻게 돌아가셨나요. 형사 아, 그게 심근경색 같긴 한데... 암튼, 여쭤볼 일이 생길 수도 있어서... 마지못해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적어주는 조각. 빠른 걸음으로 편의점 주변을 벗어난다. 하지만, 점점 과호흡이 오자, 지나는 사람들을 의식한다. 후다닥 빌라 1층으로 들어가는 조각. 벽에 기댄 채 비닐봉지를 꺼내 숨을 다급히 몰아쉰다. 겪어보지 못했던 패닉의 모습이다. 이때, 1층에 멈추는 승강기. 스르륵 문이 열리는데, 안에 고창복이 있다. 아무도 탑승하지 않자, 뭐지? 하고 밖을 잠깐 살피는 고창복. 조각은 계단 밑으로 숨어 보이지 않는다. 이내 닫히는 문. 삐- 이명 소리와 함께 주저앉는 조각. 40 엔진 이성규 71. 신성방역 / 밤 와인바에 기대 와인을 마시고 있는 손실장. 초엽이 조각 앞에서 짜증을 쏟아내고 있다. 초엽 이제 와서 이걸 누구한테 맡기라고요? 조각 똘마니들 앞에서 하지 말라, 업장도 건들지 말라. 그 동네 길거리 말고 처리할 데가 어딨어? 얼굴은 다 팔렸고. 망쳤어. 초엽 접촉 실패는 둘째치고, 얼굴 다 깠다는 건 오버 아니에요? 조각 ... 이런 주눅든 조각의 모습은 처음 본다는 듯, 황당해하는 초엽. 손실장도 고개를 젓는다. 초엽 치매라도 왔어요? 뭐 현장에 칼 대신 포크 들고 가신 거냐구요. 아니 실수로 이쑤시개 갖구 가도 잘 쓰실 분이 왜 그래요? 손실장 (잔 내려놓으며) 오늘 와인 맛이 별로네. 대모님, 그냥 책임 지시죠. 조각 ... ? 손실장 업자가 방역을 못하면, 존재 이유가 있겠습니까? 이만 물러나 주십쇼. 조각 ... ! 손실장 주변 정리할 시간 드리겠습니다. 초엽 두 분 지금 무슨 말씀을... 손실장이 무심히 방으로 사라지자 빈자리를 쳐다보며 쓰게 웃는 조각. 72. 조각의 집 / 밤 이부자리에 누운 조각. 옆 자리를 톡톡 친다. 조각 그러지 말고 이리 와. 럭키가 조각 곁으로 오지 않고 닫힌 문 앞에서 나가고 싶어 낑낑거리고 있다. 조각 오늘은... 있어주지 그러니. 41 엔진 이성규 서운해진 조각. 자세히 보니 개가 앞이 잘 안 보이는지 벽에 자꾸 부딪치고 있다. 73. 동물병원, 진료실 / 낮 럭키의 진단을 마치고 조각에게 안내하는 강박사. 강박사 백내장이 와서 눈이 흐려졌는데, 다행히 왼쪽은 정상이에요. 조각 네... 강박사 어르신은 어떠세요? 조각 저는 괜찮습니다. 강박사 다행이네요. 그럼, 처방해드릴게요. 대기해 주실래요? 조각이 일어나지 않고 잠시 말 없이 강박사를 바라본다. 조각 복숭아가… 달고 맛있더군요. 처방전을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던 강박사. 멈칫, 손을 멈춘다. 강박사 아, 그렇죠? 장모님, 무릎도 안 좋으신데 새벽마다 얼마나 좋은 걸로 떼오시는지. 조각 (물끄러미 보다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나요? 강박사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때 간호사가 노크를 하고 들어온다. 그러자, 천천히 일어나 문쪽으로 나서는 조각. 강박사 아, 그게… 있네요. 드릴 말씀이. 조각이 돌아본다. 간호사가 뭐지? 하고 바라본다. 강박사 녹내장이 오면 시술을 해야 하니까 꼭 다시 오셔야 합니다. 조각이 희미하게 웃고 돌아선다. 74. 과일가게 / 낮 42 엔진 이성규 과일을 보는 척하며 가게 안을 기웃거리는 조각. 가게 안쪽 쪽방에서 식사 중인 강박사 엄마, 해니. 강박사 엄마가 조각을 보자마자 숟가락을 얼른 내려놓고 나온다. 윤여사 오랜만에 오셨네. 조각 단골도 아닌데 알아보시네. 윤여사 에이, 손님을 왜 까먹어. 귤 좋은 거 들어왔는데, 드셔보셔. 조각 신 거 질색인데... 반으로 자른 귤을 불쑥 내미는 강박사 모. 껍질을 까 입에 넣는 조각. 조각 아, 네. 귤 다네요. 한 망만 주세요. 이때, 해니가 뭔가를 들고 뛰쳐나온다. 해니 참, 할머니, 이거요. (크레파스로 그린 초대장 내밀며) 저 공연해요. 오세요. 조각 어쩌지. 못 가는데. 곧 이사가야 해. 해니 안 돼요. 춤 연습 엄청 했단 말이에요. 윤여사 어이구, 해니야, 너 또. 윤여사가 조각에게 귤 봉지를 내밀고 해니를 말리며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순간, 얼어붙는 조각. 뭔가 익숙한 냄새다! 스윽- 옆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다가서는데, 힐끗 보면 투우다! 가게를 쭉 훑어보며 단감을 집어 드는 투우. 돌아보지 못하는 조각. 이마에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린다. 투우 홍시는 없어요? 윤여사 (다시 나오며) 홍시는 담주에 들어오는데... 단감 며칠 놔두면 그게 홍시 비슷하게 되지 뭐. 투우 에이, 그게 어떻게 같아요. 선물용으로 좀 사야되는데... 조각 저 그럼... 조각이 조용히 투우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는데, 안쪽의 해니에게 인사를 건네는 투우. 투우 꼬마야, 안녕. 그림 완성했어? 해니 어, 아저씨, 또 왔다. 투우가 조각을 쳐다보며 씨익 웃자, 투우를 가게에서 끌어내려는 듯 휙 돌아서는 조각. 43 엔진 이성규 75. 시장 골목 / 낮 시장 출구를 향해 걷는 조각. 갑자기 오른쪽 시장 골목으로 방향을 튼다. 점점 인적이 드물고 으슥한 길로 접어드는데, "어딜 도망가!"라는 소리와 함께 어깨가 잡히는데, 확 뿌리치는 조각. 퍽! 동시에 투우의 왼뺨을 강하게 내려치는 조각의 펀치. 안경이 날아가고 잠시 흐트러지는 투우. 조각 니가 한 짓이냐? 캭. 입 속에 고인 핏물을 뱉으며 안경을 주워 먼지를 터는 투우. 투우 눈치는 살아 있네? 어때, 속 좀 풀렸어? 조각 대체 상관도 없는 노인을 왜... 투우 그 할배 땜에 결정적 타이밍을 놓쳤잖아. 조각 뭐? 그래서... 죽였다고? 투우 못마땅했달까. 명색이 대모가 폐지에 과몰입해서 앞뒤 구분도 못하고. 어이없는 도발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이를 악무는 조각, 돌아서서 가버린다. 투우 근데 그 수의사는 원래 그렇게 친절한가. 딸내미도 스윗하고. 툭. 비닐봉지를 떨어뜨리는 조각. 귤 몇 알이 투우의 구두코까지 굴러가 멈춘다. 조각 강박사네,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투우 할머니, 진심이구나...? 조각 경고했다. 투우 재주가 좋네, 수의사 선생. 얼음여왕 마음을 사르르 녹이시고. 조각의 숨이 거칠어진다. 흥미롭게 바라보는 투우. 조각 너 진짜 목적이 뭐야? 투우 진짜 목적? 웃기는 게, 사람들은 자기가 가는 덴 어딘지도 모르면서 꼭 남더러 어디가냐고 캐묻더라. 당신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정말 알기나 해? 조각 ..... 투우 내가 말이 안 된다는 건, 마흔에 예순다섯이라서가 아냐. 얼마든지 바라볼 자유가 있지. 근데... 자격은 없잖아? 44 엔진 이성규 바닥에 떨어진 귤을 밟으며 사라지는 투우. 조각은 으깨진 귤만큼이나 비참하게 짓밟힌 느낌이다. 76. 네일샵 / 밤 상가를 빠르게 지나치다 문득 불이 환하게 켜진 네일샵이 조각의 눈에 들어온다. 관리사들이 나란히 앉아 여자들의 손을 붙잡고 있다. 자기도 모르게 멈춰서는 조각, 문득 쇼윈도에 비친 얼굴을 본다.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전시된 화려한 무늬의 인조 손톱들을 보는데, 매니저가 반갑게 조각을 맞는다. 매니저 아, 어머니도 손톱 손질 하시게요? 그 소리에 한 손님이 인상을 쓰고, 여고생은 슬쩍 자리를 옮긴다. 돌아서는 조각. 77. 조각의 집 / 밤 긴 외출에서 힘없이 돌아온 조각을 반갑게 맞아주는 럭키. 녀석의 밥그릇은 당연히 텅 비어 있다. 현관에 들어서는 조각. 털썩 귤 봉투를 내려 놓는다. 럭키가 다가와 봉지 속 냄새를 맡자 조각이 막는다. 조각 너… 먹는 거 아니다. 뭐라도 챙겨 먹이려고 낡은 냉장고를 열어보는 조각. 몇 안 되는 음식 사이에서 검게 변한 채 썩어가는 복숭아 세 개가 보인다. 조각 이게… 언제 이렇게…. 물컹한 복숭아. 조각이 들자마자 손에 잡자마자 그대로 부서져 흘러내린다. 썩어서 냉장고 벽에 달라붙은 파과의 살점들을 긁어내는데, 툭- 늙고 힘없는 손톱이 툭 부러져 버린다. 그 위로 톡톡 떨어지는 눈물방울. 조각의 흐느낌을 느낀 걸까. 럭키가 다가와 몸을 비빈다. 잠시 후, 천천히 눈을 치뜨는 조각. 무언가를 결심하는 단호한 눈빛이다. 78. 골목 / 새벽 퇴근길. 골목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강박사.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하늘을 본다. 강박사 아 – 오늘은 별이 참- 45 엔진 이성규 이때, 무언가가 휙 날아와 강박사의 목에 박힌다. 침이다. 주춤하는 강박사, 어지러운 듯 고개를 내젓더니 그대로 쿵, 쓰러진다. 캄캄한 골목 끝 강박사를 내려다보는 조각. (투우) 이러다 회사 손에 처리되는 것보단 할머니 손이 낫지 않아? 고통도 줄여주고... 강박사는 잠자듯 눈을 감고 있다. 칼을 꺼내는 조각, 빠르게 목의 동맥을 향해 내리꽂는데 주춤한다. 흔들리는 눈. 강박사의 얼굴을 잡은 손이 덜덜 떨린다. 이내, 이를 꽉 문 조각, 다시 칼을 내리 꽂는데… 잠시 후, 지나가던 행인 움찔한다. 정신을 잃은 강박사가 골목 전봇대에 기대 있다. 강박사를 깨우는 행인. 그것을 거리를 두고 지켜보던 조각, 휙 돌아 도망치듯 벗어난다. 79. 신성방역 / 낮 줌 화면 속. 화가 잔뜩 난 홍여사가 따지고 들고 있고, 눈가면의 손실장과 초엽이 쩔쩔매고 있다. (홍여사) 신나서 돈 받아처먹을 땐 언제고. 왜 아직도 그 새끼가 버젓이 숨쉬면서 싸돌아다니는 건데! 니들 진짜 업자들 맞아? 같이 죽자는 건가, 엉? 손실장 좀 진정하시고. (홍여사) 계속 이 장사할 거면, 이번 주 내로 결판내. 알았어? 픽- 끊기는 화면. 한숨을 내쉬는 손실장. 초엽에게 닦달한다. 손실장 초엽씨, 철사랑 거미, 아직 답 없어? 홍여사 난리친다. 시간 없는데. 초엽 그게 지금 대모님 리젝한 건이라고 다들 몸사려서... 손실장 그럼, 빨리 입찰이라도 돌리든가! 초엽이 서둘러 비공개 다크웹에 특별 방역 공고를 올린다. 업자들이 속속 접속하기 시작한다. 80. 호텔 / 낮 창가에 서서 건너편 복성 건설의 펜트하우스를 쌍안경으로 살피고 있는 투우. 이때, 지이잉 울리는 진동 소리. 테이블 위에 놓인 대포폰 중 하나가 울린다.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금박이 박힌 명함 한 장을 46 엔진 이성규 챙기는 투우. 81. 추모공원 / 낮 화로 앞에서 최씨를 추궁하고 있는 조각. 조각 자네가 투우 그놈 소개했다고? 최씨 그란디? 조각 어떤 애야. 최씨 아, 한 3년 전부터 뒷처리 맡기던 놈이었는디... 뭐든 곧 잘 혀서 나가 여그저그 소개도 시켜주고 혔거든. 근데, 뭐 찾는 게 없다나? 금방 나오더라고. 왜? 거기서도 또 뛰쳐나올라고 해싸? 잠시 생각에 잠기는 조각. 82. 조각의 집 / 낮 (조각) 그놈 나이가 어떻게 돼? (최씨) 글씨... 덜컹 문이 열리고, 다급히 창고로 향하는 조각. 백열등 불이 켜지자, 오래된 잡동사니들 위로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다. 구석 소파를 밀어내자. 바닥에 설치된 작은 문이 보인다. 그 문을 열면, 보자기에 쌓여 있는 상자가 보인다. 상자를 꺼내 보자기를 푸는 조각. 속에는 1973년부터 2021년까지 연도별 일지들이 가득하다. 조각이 일기장들을 뒤지기 시작하고, 그 위로 각종 방역의 자료들이 펼쳐진다. 그 방역 대상의 가족들 중. 아들이 있는지를 체크하며 넘긴다. 아들이 있는 경우, 나이대를 체크해서 제치면서 투우 나이대로 점점 좁혀간다. 문득, 흔들리는 눈빛의 조각. 떨리는 손으로 1998년의 일지를 보고 있다. <방역 대상 : 강종선, 44세, 건설사 대표. 의뢰인: 심교언. 요청 사항 : 두개골 부술 것. 타살 미제로 남겨서 경고가 되게…> 등이 적혀 있고, 붙어 있는 가족 사진 속 꼬마의 노란 명찰 위에 <강도영>이라 적혀 있다. 83. (과거) 강도영의 집 / 낮 딩동. 벨소리에 자다 깬 얼굴로 문을 여는 도영아빠. 평범한 도우미로 위장한 조각이 꾸벅 인사한다. 조각 오늘부터 일하기로 한. 47 엔진 이성규 도영아빠가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자러 침실로 들어간다. 지금이 타이밍일까? 하는 생각으로 그의 뒤통수를 예리하게 쳐다보는 조각. 그때, 느껴지는 인기척. 방문을 열고 빠끔히 쳐다보는 9살짜리 소년, 강도영이다. 금세 표정을 편하게 바꾸는 조각. 조각 안녕. 조각 인사에 대꾸도 없이 문을 닫는 도영. 조각이 식탁 위의 메모를 확인한다. <알러지 약 3종. 아이가 알약을 못 삼키니 가루로 빻아줘야 함>이라는 복약 안내서와 살림에 관한 의무 사항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조각이 찬장을 열면 손절구가 있다. 꽉 잡고 무기가 될지 위아래로 휙휙 휘둘러본다. 딸각. 안방 문이 열리며 어느새 양복을 차려 입고 출근 채비로 나온 도영아빠. 도영아빠 물 한 잔. 조각 네. (얼른 잔에 따라 건네며) 식사는? 도영아빠 됐어. 그냥 출근해버리는 도영아빠. CUT TO. 워크맨으로 음악을 들으며 알약을 갈고 있는 조각. 어느새 학교 갈 준비를 마친 도영이 식탁에 앉는다. 조각이 얼른 이어폰을 빼고, 토스트와 주스를 건넨다. 아이는 말 없이 토스트를 먹으며 조각의 이어폰 밖으로 새어나오는 멜로디에 귀를 기울여본다. 미소를 담은 친절한 도우미로 분주한 조각. 잠시 후, 도영이 꾸벅 인사를 하고 현관으로 콩콩콩 뛰어간다. 쾅. 문이 닫히자, 웃음기가 싹 사라진 날카로운 표정으로 집 안을 둘러보는 조각.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찾다가 거실에 놓인 가족사진을 본다. 세 사람 모두 단란해 보이기 보단 다소 경직된 표정과 포즈가 인상적이다. CUT TO. 이른 아침. 가방을 맨 도영이 꾸벅 인사하고 나가자, 이어 침실에서 양복 차림으로 나오는 아빠. 도영아빠 물! 48 엔진 이성규 조각이 주방으로 달려가는데, 도영이 놓고 간 신발주머니가 현관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조각이 도영아빠에게 물을 건네자, 한 번에 쭈욱 들이켠다. 탁! 잔을 식탁에 내려놓자, 조각이 잔을 치우려고 손을 뻗는데, 도영아빠가 잔을 뺀다. 당황하지만, 티내지 않는 조각. 조각 제가 치울게요. 조각이 두 손으로 받아드는데, 도영아빠가 손을 놓지 않는다. 도영아빠 얼마나 됐지? 조각 닷새요. 도영아빠 나이 말야. 조각 (미소) 제 나이는 왜. 도영아빠 어려 보여서. 잔을 붙든 도영아빠의 손이 조각의 손으로 옮겨간다. 재빨리 일부러 잔을 놓아버리는 조각. 쨍그랑! 바닥에 떨어지면서 와장창 깨지는 컵. 도영아빠 에이 참. 조각 죄송합니다. 얼른 치울게요. 도영아빠가 옷을 터는 사이, 무릎을 굽히는 조각. 바닥을 치우며 가장 큰 유리 조각을 살며시 집어 들고, 식탁 아래를 쳐다보며 고민한다. 식탁 아래, 은색테이프로 붙여져 있는 장도리. 조각이 고민하는 사이, 도영아빠는 이미 현관으로 향하고 있다. 신발장을 열어 구두를 꺼내는 도영아빠. 현관에 앉아 신발 끈을 동여 맨다. 절호의 기회다. 재빨리 도영아빠를 향해 달려가는 조각. 손엔 장도리가 들려 있다. 도영아빠가 일어서며 확 돌아보는데, 퍽! 소리를 내며 정수리에 내려 꽂히는 장도리. 박힌 장도리를 빼내자, 얼굴 위로 검붉은 피가 왈칵 흘러내린다. 눈을 뜬 채로 그대로 쓰러지는 도영아빠. 팍, 터지는 플래시. 사진을 찍고 돌아선다. 순간,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는 조각. 눈이 커진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설레는 도영의 얼굴이 화면에 가득 찬다. (조각) 니 놈이 내 뒤통수를 노리는구나. 84. 북성건설, 비서실 / 낮 엘리베이터의 열린 문으로 과일바구니를 든 훤칠한 남자가 성큼 나선다. 세련된 수트에 뿔테 안경을 쓴 지적인 느낌의 방문객, 투우다. 49 엔진 이성규 (비서실장) 새로 오신 변호사 분인가? 비서실장의 손에 들린 금박 명함, 법무법인 베리타스, 파트너 현은호 변호사라고 쓰여 있다. 투우 네. 심회장님께 인사부터 올리라고 지시 받았습니다. 투우를 훑어보는 비서실장. 바라보는 눈빛이 매섭다. 비서실장 ... 생각보다 젊은 분이 오셨네? 투우 그만큼 실력이 있다는 뜻 아닐까요. 비서실장이 여비서와 경호원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이 스캐너를 가지고 다가온다. 여비서 보안절차니까 양해 부탁드립니다. 투우가 두 팔을 벌리고, 경호원이 스캐너로 몸과 바구니에 훑는다. 한쪽 구두끈이 살짝 풀린 신발부터 죽 훑고 올라온 스캐너가 왼손목에 닿을 때, 삐익- 소리가 울린다. 소매를 걷는 투우, 롤렉스 시계다. 여비서 실례했습니다. 이쪽으로 모실게요. 여비서의 안내에 따라 투우가 육중한 양개문의 앞에 멈춰 선다. 85. 북성건설, 회장실 / 낮 문이 열리자 천장이 높고 으리으리한 대리석 인테리어의 회장실로 들어서는 투우와 여비서. 저 멀리, 햇볕이 잘 드는 커튼월 창 아래 전지가위를 들고 분재를 손질하고 있는 심회장. 여비서 회장님. 베리타스에서 신입 변호사를 보내왔습니다. 꾸벅 인사하는 투우. 분재를 보는 심회장의 표정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하다. 심회장 이거 와 이리 웃자란노. 탁, 심회장이 전지가위를 움직여 분재의 뻗친 가지 하나를 쳐낸다. 50 엔진 이성규 투우 그렇게 잘라내시면, 나무가 아파할텐데요. 심회장 (피식) 치아라 마. 고통은 사람이나 느끼는 기... 허어억! 컥! 휙! 순식간에 심회장의 목에 감겨지는 검은 구두끈. 툭, 가위를 떨어뜨리고 버둥거리는 심회장. 창으로 뒤에서 목을 조르고 있는 투우가 비친다. 심회장이 가위를 향해 손을 뻗는데, 투우가 먼저 낚아채 손등에 꽂는다. 고통에 신음하는 심회장에게 속삭이는 투우. 투우 물론 사람도 고통을 느끼죠. 특히 잘려나갈 땐...! 근데 울아빠 잘라낼 땐 몰랐었나? 알면서 왜 그랬어요? 그 인간이 바퀴벌레긴 하지만, 그렇다고 당신이 심판할 권리는 없잖아? 심회장 ... (눈이 커진다) 투우 자, 고통에 5단계가 있다면, 지금 얼마쯤 될까. 심회장 크허어어억. 투우 앗? (끈을 더 조이며) 아직 숨 쉴 여유가 있으시네? 심회장 (입만 뻐금거리는) … 투우 아참, 말을 못하겠구나. 그럼 손가락으로! 심회장이 겨우 왼손을 움직여 손가락을 펼치자, 그대로 꺾어버리는 투우. 투우 저런, 힘이 남아 있었네? (나머지도 계속 꺾어나가며) 아다지오 그라베. 천천히. 아주 고통스럽게. 86. 복성건설, 엘리베이터 내외 / 낮 회장실 전용 엘리베이터 안에서 느긋하게 구두끈을 다시 묶고 있는 투우. 20층을 지나자, "아~악! " 엘리베이터 터널을 통해 여비서의 비명 소리와 " 저새끼 잡아! "라는 비서실장의 고함 소리가 희미하게 이어진다. 분장을 벗겨내며 일어서는 투우, 흠흠, 여유롭게 바구니의 과일향을 맡는가 싶더니 에취재채기를 해댄다. INS. CCTV 관제실의 전원은 모두 꺼져 있고, 팔다리가 묶인 관리자는 재갈을 문 채 기절해 있다. 지하1층 엘리베이터 앞엔 덩치 세 명이 긴장된 표정으로 몸을 숨기고 있다. 3, 2, 1... 마침내 B1에 도착하는 엘리베이터. 스르륵 문이 열리자 후다닥 덮치는 덩치들. 헌데 안엔 아무도 없다. 51 엔진 이성규 덩치1 (인이어로) 실장님 아무도 없습니다! (비서실장) 무슨 소리야! 지하로 바로 내려갔는데! 덩치1 글쎄... 그건... 저도 잘... 당황하는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데, 동시에 펑 소리와 함께 암전이 된다. 이어 천장에서 퉁! 떨어지는 투우. 어둠 속에서 투우의 칼날이 스윽, 스윽 날리고 짧은 비명들이 터져나온다. 87. 클럽 앞 + 신성방역 / 밤 멀리 클럽이 보이는 뒷골목. 조각이 초엽과 통화하고 있다. 초엽 뜬금없이... 뭐... 본진을 친다고요? 조각 딸내미 잃고 피말라가는 그 여자 얼굴 떠올리면… 잠이 안 와. 어쩌면 소원대로 그놈을 제거해줘도… 목맬 지도 몰라. 초엽 그게 아니라… 조각 걔들 마음 바뀌었다. 그 호빠놈 내줄 생각이 전혀 없어. 걔네가 약속을 안 지키면 힘을 보여줘야 해. 그게 명성을 지키는 방법이다. 초엽 그래도 거기 잘못 들쑤셨다간 진짜 전쟁 나요! 조각 우리랑 척지면, 그쪽도 골치 아픈 건 매한가지지. 스피커폰으로 듣고 있는 손실장. 못 미덥다는 듯 표정 변화가 없다. 조각 손실장, 듣고 있지. 손실장 ... 조각 나 때문이냐. 손실장 ... 조각 실패할까 봐? 손실장 잘 아시네, 뭐. 조각 투우, 등대로 붙여! 초엽 (놀라) 어머, 진짜요? 예상치 못한 제안에 그제야 관심을 보이는 손실장. 조각 일이 끝나면 약속대로 난 사라진다. 52 엔진 이성규 그럼 모든 게 자네 바람대로 되는 거잖아. 손실장 … 조각 퇴직금도 필요없어. 내 생애 마지막 방역, 완수하고 싶다. 명예롭게... 손실장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조각이 툭 전화를 끊는다. 초엽이 벌떡 일어선다. 초엽 투우, 바로 컨택할게요. 손실장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입찰이나 막아요. 초엽 아, 네! 손실장이 말리자, 초엽이 마지못해 방을 나선다.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손실장. 88. 조각의 집 / 밤 과일바구니를 들고 조각의 마당에 나타난 투우. 럭키가 보고 현관문 향해 컹컹 짖는다. 쉽게 집안문을 따고 들어오는 투우. 쉿! 하고 손짓하자, 럭키가 금세 조용해진다. 보면 밥그릇과 물그릇이 비어 있다. 투우가 사료를 채워주자 럭키가 허겁지겁 먹는다. 럭키를 쓰다듬으며 천천히 둘러보는 투우. 투우 니 엄마는 널 두고 어딜 갔다니... 89. 클럽 앞 / 밤 사람들이 줄지어 선 클럽 앞. 밀착 수행하는 수하를 양쪽에 끼고 클럽으로 들어서는 고창복. MD들이 꾸뻑 인사를 해댄다. 이때 뒷문쪽으로 주류배달 차 한 대가 멈춰 선다. 90. 클럽, 스테이지 / 밤 시끌벅적한 클럽 안. 고창복이 휘청거리며 몸을 못 가누는 여자 한 명을 룸 안으로 집어넣고 있다. VIP들이 환호하며 문이 쾅 닫힌다. 흡족한 미소로 2층 난간에 다시 올라선 고창복. 스테이지를 바라보며 다른 타킷을 물색하기 시작한다. 그때 갑자기 팟, 하며 스프링클러가 터진다. 쏴아 쏟아지는 물줄기에 놀라는 사람들. 뭐야? 당황해하는 고창복에게 황급히 달려오는 부하1. 부하1 지금 밸브 확인하러 갔습니다. 53 엔진 이성규 살펴보니 스태프들은 스피커가 안 젖게 수습 중이고, 사람들은 오히려 열광 중이다. 고창복 후끈하네. 가끔 물쇼 한번씩 해야겠다야! 물에 젖은 고창복도 흥에 취해 쇼생크 탈출처럼 쏟아지는 물을 받아낸다. 이때, 어지러운 틈을 타 클럽 안으로 들어온 한 주류 배달원의 검은 실루엣. 91. 클럽, 사무실 / 밤 수건으로 머리를 탁탁 터는 고창복. 수하들을 보고 한숨을 쉰다. 고창복 지겨워, 가족도 이렇게 안 보고 사는데, 니들, 이제 꿈에도 나와. (수하 1에게) 야, 갈아입을 옷 좀 갖구와. 수하 1 네! 수하 1이 나가자, 갑자기 쿵 쓰러지는 수하 2. 보면, 목에 침이 꽂혀 있다. 고창복 뭐, 뭐야! 누, 구야!! 놀라서 주변을 살피는 고창복. 벽에 걸린 거울로 자신의 이마에 움직이는 빨간 점을 본다. 획, 그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탕! 그대로 쓰러지는 고창복. 캐비닛 옆에 숨어있던 후드와 마스크를 한 조각, 모습을 드러낸다. 손에는 테이저건을 들고 있다. 부르르 떨다가 안간힘을 다해 골프채를 집어들고 휘두르는 고창복. 조각을 노려보며 겨우 소리를 낸다. 고창복 누구야 너? 어떤 새끼가 보냈어?! 조각 남의 피눈물 빨아먹고 행복했니. 고창복 뭐야, 이거? 인간 고창복이, 완전 개무시당하네. 어떤 볼 장 다 본 새끼가, 이런 할망구 쭈그렁탱이를 보내! 누구냐고? 오광렬? 정순모? 설마 성마담? 조각 (피식) 인기 많아서 좋겠네. 고창복 뭐이씨? 조각 누구한테 죽는지가 뭔 상관이냐. 왜 죽냐가 중요한 거지. 안 그래? 54 엔진 이성규 조각, 머리에 대고 테이저건을 쏜다. 연기가 나는 고창복의 머리. 부르르 떨다 목이 꺾인다. 찰칵! 무표정한 얼굴로 사진을 찍는 조각. 92. 신성방역 + 홍여사의 집 / 밤 조각이 찍은 고창복 시신 사진이 손실장에게 전달된다. 손실장이 바로 홍여사에게 전달한다. 홍여사가 사진을 보더니 눈물을 흘리며 무너진다. 이내 큰 금액이 손실장에게 이체된다. 환하게 웃는 손실장. 93. 클럽, 복도 / 밤 조각, 심호흡을 하고 시계를 본 후, 살짝 밖을 내다본다. 이때, 수하 1이 옷을 갖고 뛰어오는 게 보인다. 막, 문 앞에 도착하자, 문을 확 열어 수하 1의 얼굴을 치고 뛰쳐나가는 조각. 쓰러져 코피를 흘리는 수하 1, 힘겹게 안을 들여다보고 급히 무전을 친다 수하 1 야, 출입구 막아. 검정 후드. 못 나가게 막아, 빨리! 무전을 받고 조각을 찾아 움직이는 가드들. 뒷문 쪽 출구로 가던 조각이 문 앞에 서성이는 덩치 큰 가드를 보고 유턴한다. 정문 쪽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조각. 그러나 인파에 밀려 나아가지 못하고 가드에게 들킨다. 거리를 좁혀오는 가드들. 조각이 비상구로 튄다. 그러자 다른 출구로 달려가는 부하1. 복잡한 스테이지 쪽을 빠져나와 기둥 뒤로 몸을 숨기는 조각. 손실장에게 전화를 건다. 조각 투우는? (손실장) 걔 왜요? 조각 무슨 소리야, 지금? (손실장) 미쳤다고 차기 에이스를 사지로 몰아넣습니까? 우리 대모님 참 순진하시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각 니놈이...! 94. 신성방역 / 밤 손실장 방문에 귀를 기울이며 듣다가 뭔가 의심스러운 듯 갸웃- 하는 초엽. 테이블로 돌아와 모니터 상의 <방역 보고 어플리케이션 관제시스템>을 클릭한다. 어플리케이션의 관리자 페이지가 뜬다. 가입회원 목록에서 손실장을 지정하는 초엽. 페이지가 뜨자, 화면 상단의 <음성해킹> 배너를 클릭한다. 95. 클럽, 복도 / 밤 55 엔진 이성규 조각을 찾아 빠르게 움직이는 가드들. 그들 너머 뒷문쪽 출구로 가는 조각이 보인다. 허나, 덩치 큰 가드가 문 앞에 서성이자 그대로 유턴해 정문쪽으로 향하는 조각. 헌데, 들어오는 인파가 더 많다. 애써 사람들과 거슬러 보지만, 이내 가드 1 눈에 띄고. 가드 1 (무전) 정문 4시 방향! 휙, 몸을 돌리는 가드들, 조각을 향해 범위를 좁혀온다. 주춤 물러나던 조각의 눈에 비상구가 들어온다. 잽싸게 사람들을 밀치고 그쪽으로 달려가는 조각. 가드 1, 그것을 보자, 다른 비상구로 들어가고, 이내 조각 앞을 턱 막아 선다. 두 입구가 연결되어 있다! 계단 밑에는 또 다른 가드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가드 1이 달려들어 휙, 주먹을 날리지만, 바로 피하는 조각. 허나, 이어 덤벼든 가드2의 주먹질과 발길질. 조각이 양쪽을 동시에 처리하는 과정에서 가드1의 주먹이 후드를 벗기고, 그 바람에 조각의 흰 머리가 드러난다. 주춤하는 가드1,2. 가드 1 뭐야? 백발마녀? 가드2 와따, 그, 전설이냐. 후루꾸구만. 가드2가 조각의 뒤를 노리고 칼을 휘두르는데, 조각, 빠르게 돌아, 가드 2의 칼을 든 손을 꺾어,칼을 빼앗고 목 뒤를 쳐 단숨에 쓰러뜨린다. 놀란 가드1이 칼을 휘두르며 덤벼드는데 조각이 엎어친다. 가드 1이 계단으로 굴러 떨어지자 잠시 밑으로 밀리는 가드들. 하지만, 이내 물밀 듯이 다시 덤벼든다. 쏟아지는 가드들과 치고 받느라 점점 밀리며 지쳐가는 조각. 문득 코너에서 소화기를 발견하고, 바로 뜯어 분사하자, 하얗게 변하는 복도. 소화가루 사이를 뚫고 다니는 조각의 칼 휘두르는 소리. 악, 악, 비명이 난무한다. 소화가루가 가라앉자, 그 자리엔 쓰러진 가드들이 신음하고 있고, 조각은 없다. 96. 신성방역 / 밤 두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는 초엽. 결심한 듯, 눈을 뜨며 기댄 몸을 일으키고는 어플리케이션의 관리자 페이지에서 <조각>을 검색하고,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의 위치추적 기능을 활성화하자 조각의 위치가 표시된다. 이를 확인한 초엽이 투우에게 연락한다. 97. 도로 / 밤 한밤중. 도심을 미친 속도로 질주하는 투우의 오토바이. 98. 클럽, 옥상 / 밤 쑥- 6층에서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조각, 퇴로를 물색하는데, 아래 길바닥에는 클럽에 들어가려고 56 엔진 이성규 준 선 사람들 틈에 가드들이 쫙 깔려 있다. 조각, 옆 건물 옥상을 보더니 이내 훌쩍 뛰어내린다. 털썩! 안전하게 착지하는 조각. 이때, 부르르 초엽에게 문자가 온다. <투우 출동. 대모님은 무사?> 문자를 확인한 조각, 서늘한 미소를 짓는다. 그 뒤로 같은 창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가드 3. 건너편 옥상의 조각을 확인하자, 바로 뛰어내린다. 건물 위를 위태롭게 뛰어가며 도망가는 조각. 아주 빠른 속도로 따라온 가드3이 옥상에서 사라진 조각을 찾는데. 맨손으로 벽에 매달려 있는 조각. 자꾸 미끄러지는 손 때문에 점점 아래로 내려가며 위태위태하다. 흠칫 돌아보는데, 가드3이 바로 눈 앞에 있다. 리시버에 대고 뭐라 중얼댄다. 조각, 재빨리 건물 벽의 돌기들을 집으며 아래로 벽을 타고 내려간다. 가드 3도 만만치 않다. 탁, 바닥에 착지하는 조각. 가드 3이 거의 쫓아왔다. 서둘러 건너편 도로로 뛰는 조각. 이때 조각에게 달려오는 차. 조각이 거리를 가늠하며 피하는데, 그대로 핸들을 꺾어 조각을 박아버리는 차. 그 반동에 휴대폰이 떨어진다. 도로 끝에 처박혔던 조각, 일어나 다급히 핸드폰을 주우려는데 순간, 열리는 운전석 문에 쾅 부딪쳐 튕겨 나간다. 보면, 수하 1이다! 수하 2도 보조석에서 내린다. 이어 가드 3이 다가와 조각을 내려친다. 차 트렁크에 실리는 조각. 99. 클럽, 사무실 / 밤 한성도가 고창복의 시체를 확인하고 있다. 부하1 한상무님, 잡았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한성도 창복이나 잘 보내줘라. 기사 잘 막고. 100. 클럽 앞 / 밤 잠시 후, 조각이 쓰러졌던 그 자리에 끼익 서는 오토바이. 주변을 살피는 투우. 터벅터벅 걷더니 구석에 던져진 조각의 핸드폰을 주워든다. 맞은편에 주차된 차 하나에 블랙박스가 깜박이는 것을 보는 투우. 칼로 차문을 열더니 블랙박스 USB를 꺼내 재생해본다. 101. 클럽, 화장실 / 밤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가드3. 뒤에서 불쑥 나타난 투우. 가드 3의 목을 졸라 칸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목에 들이댄 투우의 칼과 형형이 빛나는 눈동자를 번갈아 보는 가드3. 가드 3 나… 남양주 쪽에 해성농장이라고. 클럽 밖으로 요란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57 엔진 이성규 102. 해성 밀웜농장 + 신성방역 / 밤 농장 한 켠. 포박된 채 구덩이에 던져져 있는 조각. 의식이 없다. 한성도가 그 앞으로 왔다 갔다 하며 통화 중이다. 그 뒤로 수하 대여섯이 조각이 있는 구덩이 속으로 슈퍼 밀웜을 쏟아 붓고 있다. 그 바람에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고 있는 조각. 한성도 손실장, 이거 처음하고 얘기가 다르잖아? (손실장) 약속 깨고, 그 호빠 새끼 밀착 마크한 건 그쪽이잖아. 한성도 딴 데서 엎어졌음 이러지도 않아. 업장을 똥값으로 만들면 어떡하냐고! (손실장) 난 자료 소각하고, 그쪽은 대모 잡아먹고, 서로 깽값 쌤쌤 아냐? 꼰대들 사연 땜에 굳이 척질 거 있어? 미래지향적으로 새로고침 좀 하자! 한성도 이 시건방진 새끼. 안 어울리게 귀엽네. 이때 천천히 눈을 뜨는 조각. 후두둑, 얼굴 위로 떨어지는 슈퍼 밀웜들에 기겁하지만 움직일 수 없다. 점점 목까지 차오르는데, 그 중 한 마리를 집어삼켜 질겅질겅 씹는 한성도. 한성도 어쩌지, 대모님 그냥 제끼라는데? 조각 멍청한 놈, 조용히 내줬으면 쉽게 끝날 일. 너도 곧 나 따라 황천길이다. 조각의 완강함에 혀를 내두르는 한성도. 씹고 있던 벌레를 얼굴에 퉷 내뱉는다. 한성도 유언 참 더럽네. 내 새끼들, 오늘 영양보충 좀 해라. 한성도 신호에 조각의 머리끝까지 밀웜을 퍼붓는 부하들. 그리고 삽질이 시작된다. 103. 신성방역 / 밤 속이 뻥 뚫린다는 듯 넥타이를 풀어 헤치는 손실장. 와인렉에서 꽤 좋은 와인 한 병을 챙긴다. 손실장 잘 마무리 됐으니까, 대모님은 오늘부로 퇴직 처리하고... 초엽 아 정말요? 손실장 축배 들어야지! 초엽 이렇게 보내드려도 되는 거예요? 손실장 왜? 더 좋은 방법 있어요? 58 엔진 이성규 와인을 따라 한 모금 마시고, 가글하듯 요란스럽게 테이스팅하는 손실장. 허나, 초엽의 표정은 어둡다. 투우, 조각, 모두에게 연락이 없다. 다만 모니터 상에는 투우와 조각은 같은 곳으로 이동중이다. 104. 해성 밀웜 농장 / 밤 조각 위로 덮고 구덩이를 꽉 채운 밀웜들. 그 위로 흙을 퍼붓는 부하들. 기다리던 한성도가 담뱃재를 털어내고 자리를 뜨려는 순간, 콰쾅! 농장문을 뚫고 굉음으로 돌진해오는 오토바이. 다들 놀라며 비켜서는 가운데, 오토바이를 들었다 찍고, 뒷바퀴 코너링으로 두 명을 쓰러뜨린다. 부하3이 파이프 렌치를 던져 오토바이가 미끄러지자, 바닥으로 구르며 칼로 심장을 찌르는 투우. 이어 삽으로 내려치는 부하 4의 아킬레스 건을 끊는다. 부하, 5, 6, 7이 동시에 투우에게 덤빈다. 부하 5의 발목을 걸어, 부하 6에게 던지고, 바로 뒤의 부하 7, 그 틈에 투우를 칼로 공격한다. 투우, 재빠르게 피해 부하 7의 사타구니 동맥을 칼로 푹 찌르고 뺀다. 파바박 튀는 피! 부하 7, 뒹군다. 일어난 부하 5와 6, 다시 달려들어 살벌하게 합을 겨루지만, 이내 분노한 투우의 칼질에 모두 쓰러진다. 투우가 재빨리 구덩이의 흙을 파내기 시작한다. 벌레에 묻힌 조각의 얼굴이 드러나자 뺨을 치는 투우. 투우 정신차려, 이 할망구야! 투우가 조각을 끌어내자 숨을 토해내며 조각이 의식을 차리는데, 순간 빠르게 엄습하는 칼날! 투우가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피하고, 칼 든 손을 잡아 엎어친다. 구덩이 속 벌레 사이로 던져진 한성도. 허겁지겁 재빨리 기어오르며 양손을 든다. 한성도 타, 타임 아웃! 미안. 내가 잘못했... 투우, 그대로 목을 그어버린다. 후두둑, 조각의 얼굴에 피가 떨어진다. 105. 국도 / 밤 바람에 날리는 조각의 얼굴. 투우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있다. 106. 조각의 집 앞 / 밤 끼익 서는 오토바이. 조각이 내리면서 투우를 다잡는다. 조각 밥 먹고 가. 투우 그 꼴로 뭔 밥을 해. 59 엔진 이성규 조각, 단호한 눈빛이다. 107. 조각의 집 / 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국. 투우는 숟가락으로 한 움큼 퍼 맛있게 먹지만, 조각은 보고만 있다. 투우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투우가 회상한다. 에이전시 앞으로 뛰쳐나오는 투우. 저 앞으로 조각이 멀어지고 있다. 따라 걷기 시작하는 투우. 그때, 후욱 바람이 불어와 조각의 모자가 벗겨진다. 드러나는 회백색 머리칼. 넋을 놓고 보는 사이, 어느새 투우 앞으로 날아온 모자. 조각이 성큼 투우를 향해 걸어온다. 정신을 차리고 모자를 주워 드는 투우. 조각이 투우 손에서 모자를 확 낚아챈다. 얼결에 투우 손을 스친 조각의 손. 흰머리칼을 날리며 미련 없이 돌아서 가버리는 조각. (그림 일기에 그렸던 모습이다!) 투우는 손에 스친 촉감을 입술로 복기한다. 그때, 갑자기 푹 삐져나오는 웃음. 영문 모를 웃음이 터져 주체 못하는 투우. 허나, 지금 조각은 다른 기억을 떠올리며 싱글대는 투우를 노려보고 있다. 조각 25년 전인가. 나 하나 때문에 많은 일을 벌였더군. 투우 ...! 조각 미안하다. 니 아버지 일은. 투우 우아~ (하다 빤히 보며) 이건 꽤 진심 같은데? 감동한 눈빛의 투우. 숨을 고른다. 투우 근데, 미안해 할 건 없어. 고마웠으... 점점 말끝이 흐려지더니 갑자기 툭, 숟가락을 떨어뜨리는 투우. 이내 반원을 그리며 바닥으로 쿵! 떨어진다. 의식을 잃은 투우를 서늘하게 바라보는 조각. 108. 차 안, 도로 / 밤 국도를 내달리는 차. 조각이 백미러로 보면 뒷좌석에 포박된 채 누워있는 투우. 조각의 차가 이제 비포장 사잇길로 들어간다. 109. 차 안, 저수지 / 밤 끼익 서는 조각의 차. 앞에는 깊은 호수가 출렁이고 있다. 조각이 후진하려 뒤를 보는데, 60 엔진 이성규 투우 ... 일부러 실패한 거였어? 조각 반반. 진짜 올 지는 몰랐지. 투우 (흔들리는 눈빛으로) 내가 왜 구하러 갔다고 생각해? 조각 직접 끝내도 시원찮을 판에, 해묵은 복수가 시시하게 남의 손에 끝나서 되겠어? 끝까지 갖고 놀아야지. 투우 복수...? (피식) 어쩐지 너무 너저분했어. 조각 뭘 기대했니. 지 아비 복수하러 왔다고 하면, 굽신굽신 회개할 줄 알았냐? 투우 ... 조각 니가 곱게 그냥 죽어달라고 했으면 죽어줬을 지도 몰라. 그치만 더 이상 상관없는 사람들이 죽는 건 못 참아. 내가 더 추악해져서 그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면 난, 너처럼 복수하러 온 자식놈들 천 명이라도 더 죽일 수 있어. 난 애초에 끝난 사람이니까. 투우 솔직해지지. 그 사람들이 아니라, 그 남자잖아. 조각의 흔들리는 눈빛. 조각 넌 짐승 발톱에 할퀸 거 뿐이다! 결심한 듯, 부웅- 뒤로 후진하더니, 차를 틀어 일부러 가드레일을 박고, 사고 흔적을 남기는 조각. 그 자리에서 사이드를 채우더니, 악셀을 콱 밟아 급가속을 하는 조각. 100킬로가 넘게 속도계가 치닫자 사이드를 풀고 앞으로 돌진하는 차. 호수에 빠지기 직전, 차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리는 조각. 그대로 날아 호수 깊숙이 빠져드는 차. 몸을 일으키는 조각. 다리 난간 아래로 점점 가라앉고 있는 투우의 차가 보인다. 차 속에서는 허탈한 듯 창 너머를 보고 있는 투우. 눈물이 고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머리로 시트를 쿵쿵 부딪치기 시작한다. 그 충돌음이 총소리로 겹친다. 110. (과거) 강도영의 집 / 밤 타탕탕! 컴퓨터 슈팅게임에 몰입 중인 도영. 이때, 똑똑 노크 소리 후, 물과 약봉지를 든 조각이 들어온다. 도영이 곱게 갈린 약을 단번에 털어 놓고 물을 마신 뒤 입을 쓱 닦는다. 입이 쓴지 미간을 살짝 찡그리는데 막대 사탕을 꺼내 바스락거리는 비닐을 벗겨내고 건네는 조각. 도영이 망설이자, 얼른 자기 입속으로 넣으려는 조각. 조각 쓰지? 싫으면 내가 먹구. 61 엔진 이성규 도영이 사탕을 빼앗아 입에 넣는다. 조각 무슨 게임이야? 재밌어? 고개를 끄덕이는 도영. 금방 게임을 습득한 조각. 순식간에 상대를 쓰러뜨리며 라운드를 종료시킨다. 툭 바뀌는 화면. 조각 뭐야. 끝났어? 도영 네. 조각 시시해. 기지개를 켜는 조각. 황당하게 바라보는 도영. 두 사람 눈이 마주친다. 뭘 그렇게 쳐다보지 하는 조각 표정에 속이 들킨 듯 붉어지는 도영. 조각 근데 아빠는 언제 들어오실까? 도영 왜요? 조각 늦었으니까. 도영 12시 넘어야 들어와요. 안 들어오는 날도 많고. 조각 그렇구나. 너도 그만 자야지. 조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나가려는데 도영 근데. 아줌마는 무슨 음악 들어요? 조각 아. 나? 앞치마 주머니에서 워크맨을 꺼내는 도영의 손에 쥐어주는 조각. 조각 직접 들어봐. 빌려줄게. 귀에 이어폰을 꽂고 침대에 누운 도영. 딸깍.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테잎이 돌아가며 도영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강렬한 헤비메탈 사운드. CUT TO. 겁먹은 얼굴로 현관 앞에 선 도영. 만취해 퇴근한 도영아빠, 도영의 뺨을 찰싹 때린다. 62 엔진 이성규 도영아빠 이 새낀 누굴 닮아서 이렇게 비리비리한 거야?! 어? 아빠가 돈 벌고 오면, 재깍재깍 나와 인사하라 했어 안 했어? 하며, 도영을 발로 차는 도영아빠. 그대로 나뒹구는 도영, 으으 신음 소리를 내면, 도영아빠 (멱살 잡고) 세상은 전쟁터라고! 강해야돼, 임마. 죽지 않으려면! 하며, 손을 들어 또 때리려는데, 팔목을 턱 잡는 누군가. 도영, 고개 들어 보면 조각이다. 조각 사장님, 늦은 시간입니다. 목소리가 너무 크세요. 도영아빠 뭐야, 이 씨! 하며 다시 때리려는데, 어? 조각의 힘에 팔을 뺄 수가 없다. 더 힘을 줘보는 도영아빠. 조각, 힘 하나 안 들인 얼굴로 빤히 도영아빠를 본다. 조각 욕조에 물 받아놨어요. 몸 푸시죠. 도영아빠 에이씨. 도영아빠가 비틀거리며 방으로 들어가버리자, 도영을 꼭 안아주는 조각. 조각 울지마. 니가 아빠보다 강해지는 날이 올 거야. 그때 다 갚아주면 돼. CUT TO.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아빠의 시체 앞에서 움찔 멈추는 도영. 도영의 시야에 베란다의 조각이 보인다. 겁에 질린 도영에게 다가가는 조각. 아이의 눈을 다정하게 손으로 가린다. 조각 넌 아무것도 못 본 거야. 다 잊어버려. 돌아서려는 조각의 옷자락을 도영의 작은 손이 꼭 움켜잡는다. 도영 나도 따라가면 안 돼요? 조각 다음에. 더 크면. 63 엔진 이성규 도영의 손을 뿌리치며 베란다 너머로 뛰어내리는 조각. 도영이 달려오며 외친다. 도영 진짜죠? 진짜로 더 크면 나도 갈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조각은 이미 사라졌다. 허공을 보며 울먹이는 도영. 도영 내가 찾아갈게요. 꼭...! 111. 저수지, 차 안 / 밤 바닥까지 가라앉은 차. 스며든 물이 점점 차오르고 있다. 멍하니 있던 투우. 불현듯 분노와 슬픔으로 일그러지더니 고함을 지른다. 투우 어떻게 잊어. 어떻게 잊냐고!!! 이내, 몸을 비틀며 결박을 풀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허나, 꽉 조여진 매듭은 빈틈이 없고 투우의 숨은 점점 차오를 뿐. 문득, 왼손에 있던 각이 진 굵은 반지를 비틀자 날카로운 날이 튀어나온다. 112. 조각의 집 / 밤 여느 때처럼 집 앞에서 잠시 멈추고 대문을 바라보는 조각. 달빛에 그늘진 주름이 유난히 깊어 보인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우두커니 앉아 기다리고 있는 럭키. 반갑게 꼬리를 흔든다. 럭키를 꼭 안으며 자신의 지친 몸을 기대는 조각. 헌데, 럭키의 밥그릇에 사료가 채워져 있다. 물도 채워져 있다. 몽롱한 기억에 어지러워 하며 늘 하듯 식탁에 외투를 벗어 걸친다. 헌데, 너무 더럽다. 세탁하기 위해 주머니를 비운다. 그때, 손에 잡히는 종이 한 장. 꺼내 보면 해니가 준 초대장이다. 어울리지 않는 초대에 헛웃음을 짓는 조각, 내려앉는 무거운 눈꺼풀에 푹 자야겠다는 생각만 스친다. 113. 공연장 / 낮 무대의 아이들 갖가지 동물 복장을 하고 라이온 킹을 공연 중이다. 아이들이 동물 흉내를 낼 때마다, 사람들 웃음이 터지고 박수가 쏟아진다. 몰래 훔쳐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있다. 다음 공연이 해니 차례인 듯, 강박사와 모친이 설레어 한다. 이때, 한 선생님이 강박사에게 달려와 귓속말을 한다. 강박사가 놀라서 황급히 뛰쳐나간다. 114. 과일가게 앞 / 낮 64 엔진 이성규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과일가게를 찾아온 조각. 그런데, 웬일인지 문이 굳게 닫혀 있다. 다가가 안쪽을 살피는데, 이때 갑자기 한 남자의 손이 조각의 뒷덜미를 낚아챈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상대의 인중을 찍는 조각. 이어 팔꿈치로 복장뼈를 치며 멱살을 잡아 벽에 갖다 박는다. 강박사 잡았다...! 멱살이 잡힌 채로 오히려 조각을 잡았다는 강박사. 조각이 의아한 표정으로 얼른 손에 힘을 푸는데, 초췌한 몰골의 강박사가 터진 입술로 몰아붙인다. 조각 미안해요. 갑자기 잡는 바람에. 강박사 어르신 짓이죠, 그죠? 입에 고인 피를 뿜어내는 강박사.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 낯설다. 조각 네, 무슨? 강박사가 종이를 꺼내 조각에게 던진다. 얼굴을 때리고 떨어지는 종이. 강박사 병원에 팩스가 왔어요. 그거 보고도 모른 척 하세요, 네? 해니가 없어졌다고요! 공연장에서... 팩스 종이를 주워든 조각. 읽기 시작한다. INS.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캐릭터숍에서 엘사 옷을 입어보는 해니. (조각) 해니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같이 영화도 보고 엘사 옷도 샀습니다. INS. 고사리 같은 손으로 혼자서 밥을 떠먹고 새 칫솔에 양치하는 해니. (조각) 저녁엔 미역국에 갈치구이를, 아침은 열무김치에 달걀 프라이를 먹었고, (투우) 새 칫솔 주니까 알아서 양치질도 잘 하네요. 편지를 읽는 조각의 목소리가 투우의 목소리로 바뀐다. (투우) 아이를 만나고 싶으시면 5일 오후 2시에 65 엔진 이성규 그 할머니한테 아래 주소로 반드시 혼자 오라고… 조각의 얼굴이 굳어지며 손에 경련이 일어난다. 강박사 당신 진짜 누구세요? 바라는 게 뭐냐고요!! 강박사가 흥분하자, 침착하게 달래보는 조각. 조각 경찰한텐 안 보여줬죠? 잘 했어요. 제가 처리할게요. 강박사 말이 되는 소립니까. 그쪽이랑 편지, 다 넘길 거예요. 조각 그러면 애가 더 위험해져요. 강박사 뭔데 이래라 저래라예요. 다 신고할 거예요! 흥분한 강박사가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자, 팍 걷어차버리는 조각. 조각 유괴당한 아이는 살아남기 힘들어, 돈이 목적일 땐. 지금 해니는 무사해. 내가 장담해. 왜냐면, 날 노리는 거니까. 내가 찾아가기만 하면 돼. 강박사 ... 내가, 살려서 그런 거죠? 살려서는 안 될 사람을… 살려버린 거죠? 아무 말 할 수 없다. 조각을 살려서가 아니라, 조각이 그를 쳐다봐서 이렇게 된 걸 어찌 이해시키나… 조각 약속 날 애가 안 돌아오면, 그땐 뜻대로 해. 차갑게 발걸음을 돌리는 조각. 그 등뒤에 대고 강박사가 처연히 말한다. 강박사 그래도... 후회 안 합니다. 치료해 드린 거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요... 조각 .....! 잠시 멈춰선 조각이 돌아선다. 그리고 허리 숙여 깊이 인사한다. 마지막이라는 듯. 115. 투우의 집 / 낮 66 엔진 이성규 노을이 지는 도심을 바라보고 있는 투우. 그 뒤로 투우의 침대에서 잠든 해니가 보인다. 116. 조각의 집, 마당 / 밤 텃밭에 파묻어 놓은 항아리 뚜껑을 여는 조각. 항아리 안으로 깊숙이 손을 넣는다. 오래돼 보이는 콜트 45구경과 비닐봉지 뭉치를 꺼내는 조각.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탄환들. 117. 프라모델 숍 / 밤 어두컴컴한 창고에 불이 켜지자 화려한 프라모델 쇼룸이 드러난다. 조각 아버지는 좀 어떠신가요? 한씨 똑같죠 뭐. 먼저 서랍에서 홀스터를 꺼내 놓는 한씨. 크기와 재질이 다양하다. 조각 예전에는 가죽으로 된 걸 썼는데... 한씨 그거 무거워서 요즘 어떻게 써요. 프런트 브레이크 타입으로 드리면 되죠? 이렇게 걸어도 딱 붙어요. 불안하시면 버튼식도 있고. 한씨가 조각이 고른 것과는 다른 나이론 소재의 홀스터를 내민다. 조각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매거진 파우치에 탄창을 채우자, 한씨가 진열대에서 플래시 뱅과 스미스 앤드 웨슨 438과 을 꺼낸다. 한씨 요건 주문하신 거보다 30프로 줄여놓은 미니인데요. 같은 성능에 훨씬 가벼우니까 숨기고 던지고 하기 쉬워요. 플래시 뱅을 손에 쥐고 던지는 시늉을 해보는 조각. 조각 이걸로 줘요. 팔 힘도 예전 같지 않은데. 한씨 그럼, 콜트 45보단 글록 26 같은 콤팩트 한 걸로 구해드릴까요? 조각 너무 오랜만이라. 그냥 익숙한 걸로 할게요. 한씨 그럼 이거 438로다가 쓰세요. 근데, 플래시 뱅은 왜요? 뭐 게릴라 소탕하시나요. 조각 그러게. 안 쓰면 나야 좋지. 67 엔진 이성규 한씨가 무기를 상자에 넣는데, 조각이 두툼한 지폐봉투를 내민다. 눈대중으로 세어보더니 놀라는 한씨. 조각 좀더 넣었어요. 문병 한번 못 간 게 미안해서. 118. 조각의 집 / 밤 일지 상자를 태우고, 휴대폰도 불 속에 던져버린다. 고기를 구워 럭키에게 배불리 먹이는 조각. 정성 들여 럭키를 씻기고 빗질까지 해준다. 이부자리에 누운 조각. 럭키를 보고 옆 자리를 톡톡 친다. 119. 조각의 집 / 새벽 서걱서걱 숫돌에 갈리는 칼날. 그 위로 새벽 빛에 반사된 조각의 얼굴이 보인다. 상의를 입고, 가죽 멜빵을 다시 차는 조각, 칼집에 칼을 넣는다. 오른쪽 다리에도 단검 한정을 찬다. 프로젝트 문 고리를 풀고 급수기에 물을 채워 놓고, 그릇에 사료를 붓는다. 조각 다녀온다. 구석에 웅크리고 누워 있는 럭키가 미동도 없다, 이상한 기운에 흠칫 놀라는 조각. 럭키의 엉덩이 아래 푸르스름한 똥이 퍼져 있다. 떨리는 손으로 럭키의 목에 손가락을 대는 조각. 조용히 숨을 삼킨다. 조각 나도 곧 따라갈게. 120. 휴게소 / 낮 공중전화 박스 안 조각. 동전을 넣고, 번호를 누르려는데. 생각이 나질 않는 듯 더듬더듬 번호를 누른다. 신호가 가고 다행히 최씨가 받는다. (최씨) 누구시죠. 조각 낼 밤까지 연락 없으면 우리집 좀 따고들어가 봐. (최씨) 다짜고짜 뭐여? 조각 거실에 개 한 마리가 누워 있을 거야. (최씨) 언제 개를 다 키웠대요? 조각 안 키웠고 굴러들어와서 그냥 옆에 둔 거야. 갈 때 돼서 잘 갔어. (최씨) 가만, 대모님 무슨 일 있... 68 엔진 이성규 툭, 전화를 끊어버리는 조각. 121. 폐아파트 단지 앞 / 낮 낡은 폐아파트 단지로 들어서고 멈추는 렌터카 한 대. 차에서 조각이 내린다. 미로 같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조각을 집어삼킬 듯 내려다보고 있다. 저 앞으로 주차된 SUV 차량이 한 대 보인다. 122. 폐아파트 / 낮 조각이 발걸음을 죽인 채 신중하게 계단을 올라간다. 아무도 없는 괴괴한 분위기. 먼지가 수북한 계단을 조심해서 올라가던 조각이 멈칫한다. 계단에 찍혀 있는 발자국이 여러 가지다. 이 안에 있는 사람이 투우만은 아니라는 거다. 꺾인 통로를 지나는데, 순간 빠르게 몸을 빼는 조각. 탕! 바로 방금 조각 머리가 있던 곳에 총탄이 날아와 박히고. 바람결에 어린아이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난 곳을 훑어보는 조각. 최소한 7층 이상이다. 그 아래층엔 어둠 속에서 서성이는 그림자가 여럿 보인다. 이어, 연이어 쏟아지는 두 발의 총성. 조각, 그 틈에 총알이 온 곳을 본다. 살짝 드러난 모습이 투우는 아니다. 건물을 빠져나온 조각, 위를 올려보며 전체를 가늠하는데, 외각에 있는 아름드리 나무에 시선이 멈춘다. 오른손에 콜트를 쥔 조각, 왼손 하나로 버텨가며 아름드리 나무를 타기 시작하고. 3층 높이에 이르자, 2층에 그림자 하나가 어른거린다. 계단 쪽을 살피는 업자 1이다. 3층에도 또다른 업자 2의 뒤통수가 보인다. 조각, 떨리는 팔을 겨우 고정하더니, 업자 2의 머리를 조준한다. 조각을 눈치챈 업자 2가 막 방향을 틀지만, 탕! 먼저 방아쇠를 당긴다. 픽 쓰러지는 업자 2. 총소리에 다급히 달려오는 다른 업자들의 발소리. 업자 1은 2층에서 올라오고, 업자 3은 4층에서 내려온다. 빠르게 로프를 던져 건물에 걸치더니 재빨리 건물로 몸을 날린다. 동시에 양손에 총을 꺼내쥔 조각, 이어, 탕탕, 시간차를 두고 총을 발사한다. 위에서 내려오던 업자 3의 하복부에 피가 흐른다. 놀란 업자 1은 손에 맞아 총을 떨어뜨리기만 한다. 재빨리 업자 1이 새 총을 뽑아 드는 순간, 조각, 몸을 피하며 점퍼를 공중에 던지고. 점퍼가 조각을 가린 순간, 재빨리 업자 1을 향해 총을 쏘자, 바로 업자 1 머리에 박힌다. 이어, 달려가 업자 1의 시체를 확인하는 조각, 떨어진 총을 수거한다. 이어, 훌쩍 뛰어 다시 건물 외벽에 매달리는 조각. 찬찬히 올라가며 4층을 살펴보고, 아무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자, 빠르게 5층으로 올라가는데, 이때 들리는 날카로운 쇳소리. 순간 쑥 뻗어 나온 팔 하나가 조각을 향해 총을 쏜다. 재빨리 건물 안으로 몸을 굴리는 조각, 겨우 피한다. 죽은 업자 몸을 방패삼아 기둥 뒤에 붙어 상대를 살펴보는데, 상대가 빠르게 달려오자, 틈을 노리던 조각이 휙 로프를 69 엔진 이성규 던지고, 갑작스런 로프의 등장에 걸려 넘어지는 업자 4. 타타탕! 놀라 여기저기 막무가내로 총을 갈기고. 헉! 총알 하나가 조각의 팔을 스친다. 허나, 기둥 뒤 조각, 업자 4의 이마를 조용히 조준하고 그대로 관통한다. 조각, 숨을 몰아 쉬며 팔에 흐르는 피를 손수건으로 막아 묶는다. 이때, 무언가 둔탁하게 굴러 떨어지는 소리. 이어지는 신음. 기둥에서 고개를 내빼 보는 조각. 투우가 칼을 뱅뱅 돌리며 자루를 굴리며 내려오고 있다. 해니다! 조각 발로 차지마! 투우 난 당신이 아니라서. 일부러 부대를 밀어 아래로 굴리는 투우. 놀란 조각이 몸을 던져 자루를 받치자, 반동으로 굴러가 멈추는 자루. 그 사이 순식간에 조각의 이마를 짓누르는 업자 5의 총. 투우 지루해 죽는 줄 알았네. 결국 못 기다리고 내려오게 만들어? 조각 기껏 준비한 게 이런 촌극이냐? 투우 해묵은 복수가 시시하게 끝날까 걱정했잖아? 근데 좀 벌렸다고, 아이컨택도 못하고 죽어버릴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 하긴, 애들이 좀 덜 떨어졌지? 준비운동이나 됐을라나. 순간, 조각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업자 5의 표정이 굳어진다. 업자 뭐? 어린놈의 새끼가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뵈는 게 없냐. 해니가 든 부대 앞에 쭈그리고 앉더니 나른한 표정으로 보는 투우. 투우 선금 다 땡겨 드렸는데, 뭐 문제 있으신가? 업자 5 선금이 대수야? 니 병신 짓에 저렇게 다 죽어나갔는데! 칼로 부대를 톡톡 건드리는 투우. 조각이 긴장한다. 투우 그 실력에 이만한 돈 받고 오면서 총알받이라는 것도 모르셨어? 업자 5 뭐어? 이 개새! (조각을 노리던 총구가 투우를 향하고) 조각, 그 틈에 바닥의 총을 주워 업자 5의 팔에 총을 쏜다. 팔에 구멍이 난 업자의 총에서 나온 총알이 투우의 머리를 빗나가 계단에 박히고, 업자는 비명을 지르며 총을 떨어트린다. 조각이 마지막 남은 70 엔진 이성규 한발의 총알을 업자의 머리를 향해 쏘지만 발사되지 않는다. 업자5의 거친 발길이 조각의 손에서 총을 날려버리고, 이어 얼굴을 가격한다. 이어 바닥에 떨어뜨린 총을 주워 개머리판으로 조각의 얼굴을 찍어 버리는데, 옆으로 몸을 굴린 조각이 칼을 꺼내 두 발목을 그어 버린다. 업자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투우가 호탕하게 웃는다. 투우 거 봐요. 만만한 사람 아니라니까. 조각도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투우 아저씨, 애썼다. (차 키 툭 던지며) 올라가서 잔금 후하게 쳐줄게. 오케이? 잠시 노려보던 업자5. 차 키를 주워들고 어기적거리며 기어서 내려가기 시작한다. 한심하게 보던 투우, 부대에서 해니를 꺼낸다. 조각이 막으려고 나서보지만 투우의 가벼운 발길질에 나가 떨어지는 조각. 투우 실망스럽게 왜 이래? 내가 수틀려서 얘까지 죽이면 어쩌려고? 손발이 묶인 해니, 조각을 보자 울먹이기 시작한다. 해니 할머니... 쓰러진 조각의 옆에 아까 놓친 나머지 권총 하나가 보인다. 마지막 힘을 다해 권총을 집어들며 몸을 일으키는 조각. 하지만 투우의 예리한 칼날이 이미 해니의 귀를 누르고 있다. 해니의 작은 목이 파르르 떨리더니, 다리 사이로 오줌이 흐른다. 머리를 조준하는 조각. 갈등한다. 머리를 날려도 해니가 다치는 건 못 막는다. 그 생각을 읽은 투우가 빙긋 웃고, 조각은 어쩔 수 없이 칼과 총을 내려놓는다. 조각 아이는 건들지 마. 투우 그래도 노망은 안 들었네? 나머지도! 조각은 칼집을 풀고, 허리 뒤에 숨겨둔 백업건과 함께 홀스터 전체를 바닥에 던진다. 조각 어떻게 하면 애를 돌려보내줄래? 투우 뭘 돌려보내. 재주껏 데려가면 되잖아. 조각 ... 왜 강박사를 끌어들여? 투우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난 청소해야 될 쓰레기고, 그 의사는 지켜줘야 할 대상인가? 71 엔진 이성규 조각 그런 것 같구나. 투우, 순간 무섭게 조각을 노려본다. 투우 손실장은 이번 기회에 할머니를 청소하라던데? 에이전시의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나. 조각 .....! 투우 뭘 놀래? 늙고 쓸모 없어지면 버리는 거지. 조각 그래? 누군 늙고 쓸모 없어졌다고 버려선 안 된다던데. 투우 (그게 누군지 단번에 알아차리고) 할머니는 절대 그 의사 놈 못 지켜. 내 손으로 죽일 거거든. 그 가족들도 전부 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각의 광대뼈에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붉은 피가 스며 나온다. 그나마 반사적으로 팔을 쳐내 칼날의 방향을 바꾼 것. 아니면 이마에 자상을 입어 흐르는 피로 시야가 막혔을 것. 그 사이 해니는 슬슬 눈치를 보며 계단 쪽으로 향한다. 이제, 조각이 팔을 돌려 투우의 늑골 하단을 노린다. 하지만 빗나가고, 되레 투우가 나이프 손잡이로 조각의 등을 찍더니 조각의 무릎 뒤 관절을 걷어찬다.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나동그라지는 조각. 한동안 움직이지 못한다. 투우 꽥꽥거리기는… 한숨을 내쉬는 투우. 기둥으로 성큼 다가가 해니의 머리카락을 잡고 건물 끝 쪽으로 끌고 간다. 투우 경고했는데, 계속 이렇게 시시하면, 얘부터 집어 던진다. 놀란 해니가 울음을 터뜨리자, 조각이 이를 악다물고 무릎을 세워 일어선다. 순간, 콰광- 엄청난 굉음과 진동에 다시 주저 앉고 만다. 건물 밖에서 연속된 폭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는다. 차에 기어서 올라탄 업자가 시동을 거는 순간, 차가 폭발한 것. 겁에 질린 해니는 입을 막아 울음을 참고 콧물을 삼킨다. 투우 이걸 어쩌나. 이긴 쪽이 할매 차 몰고 가야겠네. 조각 잘못 배웠구나. 남을 벌레 취급하면 너도 벌레처럼 하찮아지는 거다. 투우 미안. 난 독학이라서... 해니를 다시 팽개치려던 투우, 문득 움켜쥔 머리카락이 손목시계 줄에 걸린 걸 보고 머리카락을 칼로 잘라버린다. 해니가 미세하게 엉덩이를 비벼가며 조금씩 멀어지려고 애쓴다. 조각이 투우 어깨너머로 72 엔진 이성규 조금씩 꿈틀거리는 해니의 탈출 의지가 확인되는 순간, 슈욱- 이어, 빠르게 날아오는 투우의 칼날, 조각의 목을 노리는데, 손목으로 겨우 막는다. 손목에 그어진 붉은 금에서 순간적으로 피가 흩날린다. 조각이 측면으로 몸을 낮춰 다시 경동맥으로 날아오던 칼날을 피하고 벅나이프를 수평으로 질러 투우의 허벅지를 찌른다. 탄력 있고 질긴 근육의 파열감이 손잡이로 전해지는 찰나, 투우가 팔로 조각의 눈을 후려치는 바람에 미처 칼을 뽑지 못하고 나가떨어진다. 조각이 양미간과 무명골의 통증을 추슬러 몸을 일으키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는 투우는 외측광근의 일부가 툭툭 끊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칼을 천천히 뽑는다. 투우 이거 나 주는 거야? 투우의 양손에서 피에 젖은 칼들이 깃털처럼 가볍게 회전한다. 조각, 또한 다급히 옆주머니에서 예비 칼을 뽑는다. 하지만 작다. 조각이 비실거리는 것 같지만, 이미 자세는 갖추고 있으므로, 투우는 조각의 빈틈을 찾아내기 위해 한 걸음씩 절룩거리며 다가간다. 투우 아무래도 좀 불공평하지? 하나 버릴까? 조각 편할 대로. 근데 후회할 거다. 순간, 눈앞으로 벅나이프가 수차례 작은 원을 허공에 그리며 날아온다. 조각은 뒤로 몸을 빼 아슬아슬하게 피한 줄 알았으나 허벅지에 칼날이 박혀 있다. 투우 나 분명히 돌려줬다. 조각 그거 고맙네. 신음 섞인 심호흡 끝에 칼을 뽑아 쥔 조각. 작은 쪽을 버린다. 그 사이 슬슬 뒷걸음질치는 해니, 드디어 층계에 닿는다. 때마침 층계참에 액정이 깨진 휴대폰이 눈에 띈다. 업자가 기어 내려가다 흘린 것. 해니가 슬쩍 눈치를 보고 얼른 입으로 액정을 터치한다. 긴급통화 버튼이 나오자 112를 혀로 입력하려고 애쓰기 시작한다. 밖으로는 차체 타는 소리가 시끄럽고, 기둥 너머에선 미친 듯한 아저씨와 허약한 할머니가 섬뜩한 칼날 소리와 비명을 주고 받고 있다. 겨우 112를 입력한 해니. 바닥 전화에 엎드려 귀를 대어본다. (경찰) (소리) 네, 112입니다. 무슨 일이세요? 해니 (제법 침착) 저 납치당했어요. 아빠한테 전화 좀 해주세요. 010… 73 엔진 이성규 (경찰) 아, 네. 어린이,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해니 저, 강해니요. 빨리 위치추적해서 저 좀 구해달라구요. (경찰) 음, 납치당했는데, 전화는 어떻게 하고 있어요? 경찰은 장난전화로 알고 계속 되묻고, 해니는 또박또박 대답을 한다. 순간, 훽 뺏기는 핸드폰. 투우다. 이내 전화기를 벽에 던져 부숴버린다. 바로 해니를 그을 듯 노려보는데, 순간 투우의 등을 베는 조각. 해니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치다 층계 아래로 구른다. 투우가 곧바로 조각의 목에 칼을 날리는데 조각이 몸을 틀며 팔을 쳐낸다. 피한다. 덕분에 간신히 턱을 베이는 선에서 방어한 조각. 투우 이번엔 꼭 기억해. 할머니가 뿌린 씨앗이란 거. 조각 .....? 투우 난 누구랑 다르게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거든! 조각 약속? 투우 (쓰게 웃는다) 이제 와서 그게 궁금해? 투우는 설렁설렁 싸우면서도 예리하게 칼날을 퍼부으며 즐기는 눈치다. 이리저리 밀리며 쇄골 아래쪽으로 이미 피를 많이 흘린 조각. 어룽거리는 눈 사이로 해니를 살펴보는 조각. 자신이 먼저 당하면, 해니도 당한다, 경찰이 올 때까지 더 시간을 끌어야 한다, 라고 생각하는데, 순간, 조각의 늑골 아래를 투우의 칼이 깊게 베고 지나간다. 투우 뭔 생각을 하고 있어. 멍청하게. 문득, 해니 쪽을 돌아보는 투우. 조각의 의도를 파악했다. 투우 뭐야. 죽자사자 덤벼도 모자랄 판에, 시간 끌고 있는 거야, 경찰 오라고? 모욕감과 함께 공허감이 차오르며 차갑게 식는 투우의 얼굴. 투우 후... 끝까지 무시해? 그렇게 만만해, 내가! 마침내 단번에 끝내겠다는 듯, 거칠게 달려드는 투우. 조각의 경동맥을 노리고 칼날을 밑에서 위로 치올린다. 순간 조각이 몸을 뒤로 완전히 젖히며 무릎을 꿇는다. 투우의 예상과는 달리 칼날이 경동맥 대신 허공을 가로지른다. 대신, 넘어지는 척하던 조각의 칼이 투우의 하복부에 꽂힌다. 놀란 투우가 감탄한 얼굴로 내려다보는데, 조각이 칼을 간 부위까지 올려 긋는다. 털썩- 투우가 조각 위로 넘어지며 74 엔진 이성규 연인들의 포옹처럼 포개어진다. 힘을 다 쓴 듯 잠시 움직임이 없는 둘. 조각이 투우의 몸을 뒤집어 힘겹게 밀어낸다. 피를 토하는 투우. 기도가 막히지 않게 뭉친 점퍼를 투우의 등에 받쳐주는 조각. 잠시 투우를 내려보는 조각.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내 고통을 줄이려는 듯 벅나이프를 똑바로 쥐는데, 조각 편하게 가라. 투우 놔둬. 조각 (망설이다 칼을 접고) 너무 억울해하지 마. 나도 곧 따라갈 거 같으니까. 투우는 호흡이 밭아지는 와중에도 입가에 경련 같은 미소를 띤다. 잠시 환각에 빠지는 듯, 눈에 햇살이 가득한 주방이 보인다. 탕탕탕. 조각이 절구에 알약을 빻고 있다. 어린 투우의 뺨에 조각의 머리칼이 닿고 숟가락에 하얗게 갠 가루약이 눈 앞에 다가온다. 그림일기를 슬쩍 가리며 고개를 들자 어깨를 감싸쥐는 조각. 아찔한 향기에 숨을 멈추고 떨리는 입술을 살짝 벌리는 어린 투우. 상기된 얼굴로 올려다보는데,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눈빛이다. 에에취- 순간 터져나온 재채기가 가루약을 날려버린다. 투우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밖에 없었어. 아줌마한테 오는 길이... 조각 뭐? 투우 그때 수면제. 왜 안 먹였어? 그럼 더 쉽게 끝냈을 텐데. INS. 투우가 보던 방역 자료. <…초등학교 2학년 아들 있음. 필요시 수면제 투약….> INS. 손절구에 알약을 털어넣는 조각. 앞치마 주머니에서 수면제 약봉지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다. 조각 ... 그러고 싶지 않았나보지. 투우 그니까 왜 잘 해줬어? 이, 이렇게 알아보지도 못할 거면서, 그때를 기, 기억도 못할 거면서 왜 음악 들려주고, 왜 용기를 줬어? 그제야 투우의 진심을 읽어내는 조각. 눈빛이 흔들린다. 조각 다 잊으라고 했을 텐데... 투우 유일한 희망을 잊을 수 있어? 조각 ... 왜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니. 투우 무섭잖아... 못 알아보면... 싫어하면... 어떡해. 기억해도 나 싫어할까봐. 그럼 정말 최악이니까... 75 엔진 이성규 눈이 감기며 호흡이 어려워지는 투우. 조각이 머리를 무릎에 받쳐주자 숨쉬기가 조금 더 편해진다. 어린 시절처럼 투우의 지친 얼굴을 어루만져주는 조각. 가늘어지던 투우의 눈동자가 살며시 열린다. 투우 … 이젠 다 떠올라? 조각 ... 그래. 투우 어떻게? 조각 사람이 갈 때 되면… 주마등이 확 번지지. 조각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는 투우. 결국 다 떠올리지 못했음을 알아차리고 살짝 실망한다. 투우 시시해... 갈 때 되면 다 떠오른다고? 그러니까, 한마디로, 당신은 아직 갈 때가 안 됐다는 거네. 크게 숨을 한번 쉬더니 멈추는 투우.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문득 중얼거리는 조각. 조각 이제... 알약, 삼킬 줄 아니. 멀리 경찰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화면 어두워진다. 123. 신성방역 / 낮 화면 밝아지면 조각이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복도가 보이는 CCTV엔 이미 쓰러진 업자들이 가득하다. 손실장과 초엽이 무표정하게 조각을 맞이한다. 피 묻은 투우의 칼을 바에 꽂으며 마주 앉는 조각. 툭비닐봉지를 건네자 손실장이 들여다본다. 썩은 복숭아다. 손실장이 복숭아 한 알을 꺼내고 피식 웃는다. 손실장 이 딴 거를 돈 주고 샀어요? 조각 이게 파과라는 거다. 모양은 이래도 맛은 좋대지. 손실장 (냄새 맡아보고) 흠. 그럴 리가. 조각 수차례 의뢰 들어왔던 지목사 방역이 왜 번번히 거절됐는지 생각해 봤다. 손실장 타겟 선정은 상관하실 일이 아닌데? 조각 장비가 죽던 날, 투우가 나타난 것도 그 이유겠지. 넌 그 목사를 보호하려던 거였어. 손실장 .....! 76 엔진 이성규 조각 언제부터야. 이렇게 썩어버린 게. 손실장 푼돈 받고 명분으로 버티는 거, 그게 이 시대에 통합니까. 적자가 생존인데! 대모님도 이젠 진화라는 걸 좀 하십시다. 네? 복숭아를 팽개치고 와락 권총을 꺼내드는 손실장. 초엽도 권총을 꺼내 겨눈다. 코웃음 치는 조각. 손실장 맨날 그랬지. 기저귀 차던 꼬마가 언제 이렇게 컸냐고.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모욕을 줄 건데? 엉? 나도 낼모레 오학년이라고! 그냥 조용히 가셨으면 진짜 전설로 남고 좋았잖아! 흥분한 손실장, 조각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척- 초엽의 총구가 손실장에게 겨눠진다. 초엽 떳떳하게 하시죠. (총 빼앗고) 손실장 뭐야, 초엽씨. 에이전시 편 아냐. 초엽 맞긴 한데, 돈이 목적이면 나도 여기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쓰게 웃는 손실장. 후다닥 바에 꽂힌 칼을 뽑아들고 조각에게 휘두른다. 기다렸다는 듯 칼을 빼앗아 던져버리고 손목을 비틀어 테이블에 놓고 허리춤에서 마체테를 꺼내드는 조각. 발악하는 손실장. 조각 니가 아끼는 애, 내가 골로 보냈다. 조각이 마체테를 내려치자 으악~ 비명을 지르는 손실장. 눈에 튄 피를 허겁지겁 닦는데, 보면, 자기 손이 멀쩡하다. 내려친 건 조각의 손목이다. 조각 명령도 없이 동료를 죽였으니 이건 내 업이고. 니 몫은... 커지는 손실장의 눈. 124. 네일샵 / 밤 상가의 네일샵 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은 조각. 조각이 매니저 앞에 오른손만 올려놓는다. 매니저 어머니, 왼손도요. 77 엔진 이성규 조각이 왼손을 올려놓는데, 매니저가 놀라 짧게 비명을 지른다. 의수다! 조각 하고 싶은 대로 해봐요. 아트인지 뭔지. 125. 투우의 집 / 낮 돌아가는 문 손잡이. 조각이 안으로 들어온다. 들고 온 산세베리아 화분을 창가에 내려놓고 안을 둘러본다. 벽에 붙은 자신에 관한 각종 자료와 사진들을 훑고, 어릴 적 크레파스로 그린 조각의 뒷모습 그림을 한번 만져본다. 침대맡엔 그 옛날 워크맨이 놓여 있고 바닥엔 그림일기 책들이 빼곡하다. 그 중 하나를 꺼내 펼쳐보는 조각. 문득 마지막 페이지에 멈춘다. 투우가 물에 빠져 죽는 그림이다. (투우) 나, 그날 물 속에 빠지면서 알았어. 죽고 나서야 내가 누군지 밝힐 용기가 생길 놈이라는 거. 내가 지독한 짓을 한 거 알아. 너무너무 화가 났거든. 근데 분명 살아남는 사람은 당신일 거야. 그래도, 죽고 나서라도 내 마음만은 당신한테 닿기를 바래. 그치만 꼴보기 싫으면 버려. 어차피 난 그걸 못 볼 거고, 어떤 고통도 못 느낄 거니까. (이웃) 왔어요? 똑똑! 노크소리에 조각이 문을 열어보면, 할리 복장의 이웃이 도마를 들고 서 있다. 이웃 아, 가족분이신가요. 조각 ... 네. 이웃 (도마 내밀며) 저번에 빌려 놓고 까먹고 있다가... 근데... 어디, 갔나봐요. 한참 안 보이네. 조각 네, 갔어요. 멀리. 126. KTX / 낮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는 고속열차. 특실 창가에 앉은 조각. 손톱을 들어 환한 햇살에 비춰보고 있다. 영롱하다. 그 너머로 휴대폰으로 누군가에게 치근덕대고 있는 지목사가 보인다. (지목사) 서방님이 우리 영아 안아줘야겠다. 이 모든 게 주님의 뜻이야. 거역하면 어떻게 된다고? 78 엔진 이성규 조각이 검은 비닐 봉지에서 복숭아를 하나 꺼내 베어 문다. 파과의 달콤한 과즙이 조각의 입술을 타고 흐른다. 79